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안와르 사다트]](1971~1981)와 [[호스니 무바라크]]의 시대(1981~2011) === 나세르의 후계자로 안와르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탈중앙집중화와 족벌경제의 완화, 독재정치의 완화를 내걸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그나마 1973년에 각오 단단히 하고 소련 지원 속에 제대로 훈련하면서 이를 갈아오며 벌인 [[제4차 중동전쟁]], 또는 10월 전쟁으로 부르는 전쟁으로 이스라엘에게 장난 아닌 타격을 주었다. [[이스라엘군]] 공식적 전사자만 해도 2500명이 넘는다.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군 전사자가 총 2백 명 수준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 초반 전투에서 생긴 이 정도 전사자 수는 이스라엘을 아주 [[충공깽]]으로 몰아가고도 남았다. 물론 전쟁 자체는 이스라엘이 대반격전을 펼치는 바람에 수에즈 운하 방어선이 뚫리면서 대위기를 맞이하다가 종전되었으나, 일단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의 [[양면전쟁]]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주었기 때문에 평화협정을 미끼로 하여 이스라엘이 빼앗아간 [[시나이 반도]]를 협상으로 되찾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게 된다. 역사적인 이스라엘 방문을 실현한 사다트는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수상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아랍세계에서는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서방세계에서 그의 인기는 올라갔으나 국내에서는 반대여론에 대한 탄압 등으로 인기가 추락했고, 그 후 중동평화회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1년]]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추진하던 안와르 엘 사다트가 공식 행사 도중 이슬람 과격파에게 암살당한 뒤, 부통령이던 [[무바라크]]가 대통령직에 올라 2011년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다. 무바라크는 30년간 독재정치를 펴며 자식까지 세습하려는 계획에도 골몰했고 가장 탄탄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