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통일 [[이슬람 제국]] 시대 === 이슬람 발흥 이후 640년경, 아랍인의 침공을 받아 --자진해서-- 아랍 치하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곡물을 착취받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부와 매우 사이가 나빴던 이집트였기에, 아랍에 자진해서 항복할 기미를 보이자 동로마 제국도 아랍인들에게 '''무조건 양도'''했다. 이집트인들은 이로써 자신들의 독립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집트인의 아랍·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신학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같은 기독교를 믿는 동로마 제국 정부와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정부가 같을 리 없었다. 실제로 지배 초기에 아랍인들은 인두세만 받는 선에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유화정책을 시행했으나, 이슬람 통치가 확고히 자리잡은 이후로부터는 관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기독교도들에 대한 장기적이고 정책적인 박해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어서, 아랍의 지배 초기에는 이집트의 이슬람화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고, [[콥트어]]를 금지하는 법령도 시행되지 않았기에 꽤나 오랜기간 동안 콥트어가 제2언어로 잘 쓰였다. 이집트가 이슬람 치하에 떨어진 것이 7세기 중엽인데, 이집트의 무슬림 인구가 기독교도 인구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2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우선 물로 둘러싸여 제국과의 연결이 어려운 알렉산드리아 대신[* 이것도 이집트가 본진이었지만(레반트, 간혹 가다 키프로스 섬이나 킬리키아 등 소아시아 남해안에도 세력을 뻗쳤었다.) 지중해 너머의 그리스계 이민집단이 지배세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나, 마찬가지로 지중해 너머의 남유럽(로마 및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두었던 로마 제국의 영역이어서 해로의 연결이 매우 중요했던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시나이 반도 너머 서아시아에 중심지를 두었던 아랍 이슬람 시대에는 육로의 연결이 중요해졌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멤피스 군교에 '''푸스타트'''라는 신도시가 세워져 이집트의 행정•군사 수도가 되었고(642년 건설), 이후 [[이슬람 제국]]의 [[우마이야 왕조]](661~750), [[아바스 왕조]][* [[튀르크]]계 노예 출신의 반독립 [[툴룬 왕조]](868~905)와 [[이흐시드 왕조]](935~969) 포함, 750~969년] 시대를 거쳤다. 이 시대의 주요 건축물로는 이븐 툴룬 모스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