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집트/역사 (문단 편집) === 맘루크 왕조(1250~1517)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맘루크 왕조)] 그러다가 다시 1250년부터는 [[맘루크]]들의 [[쿠데타]]로 인해 맘루크 왕조(노예왕조[* 그러나 여러 기준에서 이 시대의 "노예"([[튀르크]]인들과 [[치르케스]]인들이 다수였다.)는 결혼, 사유재산,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고 심지어 공직의 참여가 허가되었으며 노예 해방도 권장되었다. 민족적 차이와 군인, 집사라는 직업적 특징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심지어 칼리파의 경우 여자 노예 소생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1250~1517)가 들어섰다. 술탄 알 사히르의 후궁 출신으로 여성 명군이었던 [[샤쟈르 알 두르]]와 황태자 투란샤 간의 정쟁이 결국 맘루크의 부상을 불러왔던 것이다. 샤자르 알-두르는 80일간 재위한 뒤 잇자 알-딘 아이바크와 결혼하고 아이바크가 술탄이 되었다. 아랍인들의 많은 반란에도 불구하고, 맘루크 왕조는 [[아인 잘루트 전투]](1260년)에서 [[몽골]]족인 [[훌라구]] 칸의 [[일 칸국]]을 물리치고, 다음해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파]]를 복원하며 세력을 떨쳤다. 맘루크의 분투로 이슬람 세계는 사라질 수 있는 대위기에서 구해진 것이었다. 이후 맘루크 왕조는 실질적인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 칼리파와 술탄의 관계는 [[교황]]과 [[황제]], [[천황]]와 [[쇼군]]의 관계와 유사하다. 특히 맘루크 왕조 치하에서의 아바스 칼리파는 복원된 이래 어떠한 권력도 행사하지 못했으며 그저 맘루크 술탄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의전만이 가능했다.]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며 큰 번영을 누렸다. 맘루크는 1300년을 전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일 칸국과 시리아, 팔레스타인(특히 다마스커스 공성)을 놓고 여러 차례 대결했으나 결국 맘루크가 승리했으며, 이를 기점으로 더욱 강성해지면서 오스만에 대항해 [[동로마 제국]]을 보호하기도 했다. 순니 세력이 들어오면서 쇠퇴했던 알 아즈하르도 다시 순니의 학문적, 문화적 중심지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고 카이로는 바그다드를 제치고 이슬람 세계 최고의 도시가 되었다. 십자군 잔당 역시 1291년을 기해 완전히 사라졌다. 1382년 튀르크족 중심의 바흐리 맘루크 왕조가 서카시아인과 그리스계가 주축인 부르지 맘루크 왕조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러나 맘루크 왕조는 [[티무르]]의 강성함때문에 다마스쿠스를 잃었으며, 티무르가 중국 원정을 기획하면서 점령만 면했다. 그러나 티무르 제국이 멸망하면서 맘루크는 다시 세력을 되찾았다. 맘루크는 멸망 직전까지 인도양과 지중해 전반에서 강성한 해군력을 자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