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철희(1923)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범죄자]]'''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경주]]이며, [[종교]]는 [[불교]]. 1923년 [[충청북도]] [[청주시|청주군]](그 중에서 구 [[청원군]] 지역에 해당)에서 태어났다. 일본 육군정보학교,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2기를 졸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였다. 제2공화국 장면 정권이 출범하자 총리 직할로 정보기관인 [[중앙정보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이철희가 간부를 맡았다. 이철희는 [[5.16 쿠데타]] 당시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였으며, 군사정부에서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자 해외공작국장, 국제정보국장, 해외 담당차장보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육군 [[소장(계급)|소장]]으로 예편하였다. [[신직수]], [[김재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장|장]] 휘하에서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정보부 [[차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3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로 아내 [[장영자]]와 대화산업을 경영하였다. [[1982년]]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 사기 사건인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 추징금 1억 6254만 6740원, 미화 40만달러 및 일화 8백만엔 몰수를 선고 받았다. 당시 장영자, 이철희 부부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무려 '''6404억의 어음 사기'''를 저질러서 전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 [[물가]]로 환산해보면 개인이 30대 재벌들을 상대로 수조원대의 사기를 친 것이다. 일제의 스파이 양성 학교인 나카노학원 출신이란 주장이 있다. [[http://www.sedaily.com/NewsView/1OM9HDLII7|일제 비밀요원 양성 나카노 학교 졸업생 명부 발굴…한국인 첫 확인]] 지금까지 어떤 언론도 부고 기사를 싣지 않았는데, 2018년 12월 장영자가 4번째로 구속된 뒤부터 거의 모든 언론이 '고(故) 이철희씨'로 표기하고 있다. 중앙정보부 차장과 국회의원까지 지낸 인물의 부고가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것도 의외적이라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235535|중앙일보 기사의 변호사 인터뷰에 의하면 4년전인 2014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인지는 더 봐야할 듯.]] 이후 2019년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나온 영상 파일들 중에 '이철희 장군 1주기'라는 파일이 있었고, 연도가 2015년으로 되어있는걸로 봐서는 2014년 사망이 맞는 듯 하다. 사실 이철희의 사망도 장영자가 남편의 '''상속재산'''이 묶여 있다고[* 상속을 하려면 당사자가 사망해야 하므로] 사기행각을 벌이면서 드러난건데, 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사람이라서 행적 자체를 계속 숨기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