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풍(조위) (문단 편집) == 생애 == 황초 연간에 아버지인 위위 이의를 따라 종군하면서 명성이 자자해졌다고 하며, 젊었을 때부터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업에서 명성을 얻었고 사람을 잘 보는 것으로 인해 위나라에서 상당한 주의를 끌었으며, 허창에서 군무를 종사할 때 그 이름이 더욱 알려졌지만 아버지 이의가 이를 못마땅해 외출과 사람과의 왕래를 금지했다. [[조예]]가 즉위하자 문학에 재직하면서 황문랑이 되었는데, 손오 사람이 항복하면서 강동에서 잘 알려진 중원 사람이 이풍이라고 할 정도로 오나라에도 그 명성이 퍼졌다. 이풍은 전기도위와 급사중으로 승진하고 [[조방]]이 즉위하자 영령태복이 되었으며, 조방이 다스리던 정시 연간에는 시중상서복야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풍은 항상 몸이 아프다면서 질병을 이유로 100일 이상 휴가를 얻으면 월급이 안 나오기에 수십 일을 결근하다가 잠시 출근한 뒤에 다시 병석에 누우면서 몇 년을 보냈으며, 아들 이도가 [[제장공주]]의 남편감으로 선발되자 겉으로는 사양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 꺼리지 않았다. 자신의 아우들에게는 당연히 영화를 누리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했다. [[조상(삼국지)|조상]]과 [[사마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했다고 하며, 겉으로는 맑지만 속으로는 음모를 꾸며서 사람들은 이풍을 작은 틈으로 새어드는 빛으로 비유했다. 사마의가 죽고 중서령의 자리가 비자 252년에 중서령이 되었다가 254년에 [[하후현]], 장집, 이익, 이도와 함께 [[사마사]]를 제거하려고 하나 사마사가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이풍을 불러서 죽인다. 상당히 끔찍한 방법으로 죽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사마사의 앞에서 욕을 하거나 변명을 했다가 칼집으로 찧어 죽었다고 한다. 이풍의 딸 이완(李婉)은 [[가충]]의 아내였는데 이풍이 죽자 암울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이완(삼국지)|이완]]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