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한구 (문단 편집)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했고, [[친박]]계의 추천으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에 부임했다.[* 이후 나온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034557|기사]]에 의하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직접 이한구를 공천위원장으로 지목하고 친박 리스트 등도 보내줬다고 한다. 오히려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1955)|최경환]] 의원은 고집이 센 이한구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이후 공천 관련 규칙을 둘러싸고 우선추천지역 제도의 적용을 내세워 상향식 공천제도를 강조해온 [[비박]]계 [[김무성]] 당시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때 당 대표를 무시하는 듯한 독선적인 언행과 직설화법으로 말이 많았는데, 결국 비박 학살 친박 공천을 주도해 비박계 [[유승민]], [[이재오]] 의원 등을 날린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면 이때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김무성 대표가 옥새파동을 벌이고]] 무공천 지역이 되는 등 스토리가 눈물겹지만 여백이 부족하니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결과적으로 이한구를 비롯한 친박계들의 '[[진박 감별사|진박(眞朴) 감별]] 행위' 등 독선적인 행태가 국민들에게 밉보였는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야권 분열]]이란 절호의 찬스에도 불구하고 참패를 하여 16년만에 '[[여소야대]]'라는 국회 지형이 만들어진다. 이에 이한구는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에게 '''새누리당 참패 1등 공신'''으로 지목당했다. 선거 전만 해도 총리 자리가 내정되었니 어쩌니 세간의 말들이 많았지만 선거에서 참패하며 그런 말도 쏙 들어간 상황. 물론 애초에 이한구 본인이 선거 불출마를 밝힌 상황이었고, 2016년 기준으로 나이도 72세의 고령이었던지라 정계은퇴를 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한구가 친박계의 지시를 받아 정계은퇴 전에 마지막으로 총대를 메고 이런 무리한 공천 시도를 연출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한구는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정계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었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304138?sid=100|#]] 만약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더라면 국회의원 자리에서는 물러났더라도 다른 전직 의원들이 그랬듯 이런저런 당직이나 공직을 맡았을 것은 거의 확실했기에 딱히 설득력은 없어보인다. 어쨌든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한 그는 얼마 후 한 인터뷰에서 "[[유승민]] 의원이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도록 불출마선언 등을 할 시간을 주며 기다렸다.", "유 의원이 왜 끝까지 무소속 출마를 고집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등의 말을 했다 남탓한다며 또 한번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119&aid=0002129689|#]] 결과적으로 본인의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 [[김문수]] 후보는 전혀 도와주지도 않아 [[더민주]] [[김부겸]] 후보에게 수성 갑 지역이 넘어가게 일조하고, 전국적으로는 공천 파동으로 보수층의 지지도를 깎아먹어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패배에 크게 일조한 인물이 되었다. 오죽하면 이한구가 사실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훈련받고 온 [[X맨|특급]][[스파이|공작원]]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을 정도였으며 이후 2017년 1월, [[인명진]] 비대위체제에서 각종 사건사고로 해당 행위를 했다고 판단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병석]] 전 국회부의장, [[현기환]] 전 정무수석과 같이 새누리당에서 [[제명]]되었다. 전직 공천위원장을 제명한 사례는 유례가 없던 일이었지만, 야권이 분열된 [[호재#s-1]] 속에서도 독단적인 언행과 친박, 비박 타령으로 20대 총선을 망친 원흉이었기에, 제명에 큰 잡음도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