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해봉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전 [[관료]], [[정치인]]이다. 1942년 [[경상북도]] [[대구부]] 신정(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광역시)|중구]] [[대신동]])[* [[http://naver.me/5HSE3j8D|회고록 바보 같은 인생 참조.]]][* [[달성군]] [[옥포읍]]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달성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맞지만 본인의 회고록에 따르면 중구 출신이다.]에서 태어났다. [[대구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42회)[* [[조해녕]], [[정정길]], [[이명재(검찰총장)|이명재]]와 동기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상북도청]][* 회고록 내용 중 공직생활 관련 내용에선 경북도 보건사회국장 재임 당시 겪었던 '''[[최태민]]'''에 관련한 에피소드가 언급된다. 후일 그가 '''[[친박]]'''계에 속했던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대통령비서실]], [[국무조정실]] 등에서 근무하였다. 내무부 근무 당시 [[경상남도청]]의 [[창원시]] 이전, 승격되는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에 6개 읍·면[* [[달성군]] [[성서(대구)|성서읍]], [[월배|월배읍]], [[공산동|공산면]], [[경산시|경산군]] [[안심(대구)|안심읍]], [[시지(대구)|고산면]], [[칠곡군]] [[칠곡(대구)|칠곡읍]].]을 편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관선 [[대구광역시장|대구직할시장]], 체육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본인의 회고록에선 대구시장에서 체육청소년부 차관으로의 발령이 대구직할시 금고를 [[대구은행]] 독점에서 [[대동은행]]으로의 분산 예치를 거절한 것에 따른 보복성 좌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을 역임했으며 체육청소년부 차관을 끝으로 24년의 공직 생활을 마감했다.[* 이 때 같이 일했던 장관이 '''[[이진삼]]'''이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취임했고 정권 교체에 따라 동시에 물러났다. 다만 정치적 행보는 엇갈리는 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