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현도 (문단 편집) == 과거의 행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이현도 듀스.jpg|width=100%]]}}} || || 듀스 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힙합구조대.jpg|width=100%]]}}} || || 2004년 4집 <힙합구조대> 자켓 사진 || 연예인, 음악인으로서의 이현도의 등장은 1990년으로 현진영과 와와 1기로 활동했던 [[클론]]의 [[강원래]]와 [[구준엽]]이 입영하게 되자 친한 동생사이였던 이현도, 김성재를 이수만에게 소개해서 [[김성재]]와 함께 [[현진영]] 밑으로 들어가 '현진영과 와와'에서 활동한 것이 처음이다.[* [[이수만]]이 창립한 SM기획에서 구준엽과 강원래가 와와 1기로 활동하다가 군입대를 하게 되자 현진영은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그러다가 [[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리는 모습을 지켜본 이현도와 김성재는 현진영의 모습에 큰 실망을 했다. 뉴스를 통해 알고보니 현진영이 구속된 이유가 대마초 때문이었고 그 여파로 최진열, 정해익등의 SM 직원들이 경찰에게 수사를 받아 큰 고초를 겪었으며 이 과정을 지켜본 이현도는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크게 분노했다. 당시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도 중단되었다. 이 때 이현도는 현진영의 대마초 사건으로 댄서 활동이 중단되면서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대로 댄서로서 끝날 수 없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열망과 창작욕구에 불타올라 [[신디사이저]]를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성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현도는 다시 [[문나이트(클럽)]]에 다시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되는데 이 때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는 이현도를 지인이 안타까워 하면서 오디션을 권유했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 먹고 김성재와 함께 코어의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에게 오디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 했다. 미안해진 이현도의 지인은 다시 뮤즈기획을 소개했는데 이 기획사는 환경이 매우 열악해서 사무실이 없었고 안무를 연습할 무용실도 없어 무용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후 현진영이 교도소에서 출소한 다음 자신의 첫곡인 "너에게만"을 완성해서 현진영에게 들려주었더니 매우 좋다면서 곡을 달라고 했다. 이에 반신반의하며 [[이수만]]에게 들려주었는데 이 곡을 극찬하면서 현진영의 "New Dance 2"의 앨범에 수록했다. 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큰 자신감을 얻은 이현도는 거절했다. 그 후 김성재는 한양대에 진학했고, 이현도는 실용음악과에 응시를 했으나 떨어지면서 더욱더 작곡활동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악기만으로는 편곡까지 완성한다는 게 무리여서 유대영[*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제작자 겸 총괄매니저였으며 훗날 결별한다.]의 작업실을 빌려 작곡을 하게 된다. 마침내 앨범을 완성해서 [[듀스(음악그룹)|듀스]]를 결성했고, [[1993년]] [[4월]]에 데뷔 앨범인 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나를 돌아봐]]. 그러나 앨범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 활동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 때 듀스의 곡을 높게 산 SBS의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후 듀스는 대한민국 힙합계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https://theqoo.net/square/1601501170|#]] 원시적이긴 하지만 한글 랩으로 라임을 구사한 선구자적 입지에 있기도 하고, 일단 랩 음악으로 주목도를 모은 뒤 본연의 락음악 비중을 늘려나간 서태지와는 달리 정말 흑인음악 외길을 팠다.[* 후일 현진영은 이현도에 대한 이런 평가를 의식한 듯 스스로를 힙합 문익점, 레전드 등으로 칭하는가 하면 '내가 당시 한글 랩으로 라임을 쓰려면 쓸 수 있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는 것 같아 그만뒀다'는 정신 승리격 발언에, 플로우나 멜로디를 차용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몇몇 곡들에 대해서는 샘플링이었다고 변명하는 등 꽤나 찝찝한 행보를 이어나간다.] [[1994년]]에 '너 하나만을 위해'라는 곡을 작업하였고 이 곡은 듀스의 다음 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신인가수 였던 [[구본승]]에게 타이틀곡[* 지상파 가요프로 1위에 올랐다.]을 넘겨줬다. 특히 멜로디가 듀스의 스타일이 상당히 짙다. 이후 [[1995년]]에 소속사의 입김에서 벗어나 더 듀스다운 활동을 하자는 취지에서 해체 선언을 했고, [[김성재]]를 [[솔로]]로 내세운 뒤 자신은 뒤에서 음악적인 지원을 하는 식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으나 김성재가 [[SBS]]에서 '''첫 컴백 무대에 오른 바로 다음 날'''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호텔에서 싸늘한 시체가 된 채 발견]]되었고, 유력 용의자였던 김성재의 여자친구가 무죄를 선고받고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심경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김성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그는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1년 여 간 칩거 아닌 칩거를 했다. 그 뒤 친구를 잃은 아픔을 딛고 새로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1996년]]에 '사자후'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 으로 재기를 했고, 이후 [[2000년]]까지 2집 , 2.5집 , 3집 <완전 힙합> 등 총 4장의 LP를 냈다. 또한 1집 활동 중에 열린 콘서트 실황을 라이브 앨범 로 발표했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곡을 리메이크해 <사랑해> 싱글 앨범[* 물론 한국 CD시장에는 1~2트랙이 실리는 싱글컷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이 앨범은 총 6트랙의 Maxi Single이다.]을 발표했다. 싱글을 제외한 모든 솔로 앨범에는 김성재를 그리워하는 곡을 실었다.[* 친구에게(1집, 라이브), 여름은 가득히(2집), Sunshine(D.O Funk), Lifetime(3집)] 다만 [[김성재]]의 죽음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르기보다는 후배 가수들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등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 특징. 가장 대표적인 앨범으로 룰라의 4집(타이틀곡: [[3!4!]])[* 룰라에게 곡을 줬던 이유는 김성재 사망 당시 동료였던 룰라가 김성재의 빈소를 끝까지 지켜주고 발인까지도 함께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해 겨울 룰라는 3집 앨범을 발표 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표절의혹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함과 동시에 그동안 얻었던 인기를 잃어 몰락을 겪게 된다. 이 상황을 지켜본 이현도는 친구의 장례식을 끝까지 지켜준 보답으로 룰라의 재기를 돕기로 마음을 먹고, 4집 타이틀곡 '3!4!'를 만들어줬다.], [[지누션]]의 1집[* 팀 자체를 양현석과 공동 프로듀싱했다.](후속곡: 말해줘), [[유승준]]의 3집(타이틀곡: [[열정(유승준)|열정]]), 4집(타이틀곡: 비전, 후속곡: 연가)이며 이들 모두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고[* 열거된 곡들은 모두 지상파 가요프로에서 1위에 올라본 곡들이다. 이 당시 이현도는 본인의 앨범은 실험적으로 만들면서, 다른 가수들에는 대중적인 곡들을 써줬다.], 타이틀곡의 멜로디나 가사 또한 이현도의 손길이 느껴지는 곡들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앨범은 일단 [[2004년]] 말경 [[힙합]] [[가수]]들을 총집합시켜 만든 프로듀싱 앨범 이 마지막이다. 이 이후로는 완전히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