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현란 (문단 편집) == 박정희와의 만남 == 1947년 가을 [[강원도]] [[춘천시]], 이현란은 루시고등여학교 동문인 고금옥의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를 맡았다. 신랑은 [[박경원(1923)|박경원]] 대위였고, 신랑 들러리는 [[김점곤]] 대위였다. 또한 박경원 대위와 친하게 지내던 [[박정희]] 대위도 하객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이어진 피로연에서, 신혼부부와 하객들은 모두 함께 즐겁게 놀았다. 박정희는 자신의 동료이자 이현란의 6촌 오빠 이효(李曉)[* [[함경남도]] [[함흥시]] 출신.] 대위에게 부탁하여, 이현란과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결국 1948년 6월부터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다. [[약혼]]은 이효의 부인이 먼저 와서 박정희와 약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양쪽에서 부추기고, 부모님도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형편에 박정희가 2학년 1학기 학비 7,500원도 대신 납부해주기도 했다. 이현란은 박정희와의 약혼에 대해 '키는 작았지만 박력과 기품이 있고, 침착하고 나한테 잘하니까' 여자로서 끌렸고, 결국 약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약혼식도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화장도 안 하고 피아노책 구입하려고 (훗날 [[독일]]에 간) 친구랑 [[기숙사]]에서 나오는데 박정희가 '이의 없죠?' 하길래 부끄러워 대답 못 하다가 그것이 수락한 것이 되었고, 독일 간 친구와 같이 박정희를 따라가 보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명동의 한식당에서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서울]] [[용산구|용산]] 관사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현란은 어린 마음에 창피해서 '약혼식 소식은 친정에 안 전했다'고 한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67253&C_CC=AC|#]] 교제한 지 2달이 지난 1948년 8월, 박정희는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했다. 서울 용산의 옛 [[일본군]] [[장교]] 관사가 [[대한민국 육군]]에 불하되어, 박정희도 소령 진급과 함께 관사를 배정받았다. 이현란은 이북에서 홀로 월남하여 의지할 곳이 없었다. 학기 중에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으나, 방학 때는 기숙사를 비워주어야 했다. 친구의 집에 신세를 질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중 [[박정희]]를 알게 되어, 그와 약혼하고 결혼을 전제로 용산 관사에서 동거하기 시작했다. 신랑 들러리였던 '김점곤' 대위는 몇 개월 후, [[박정희]] 소령의 관사를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과 함께 들러리를 했던 이현란이, 박정희 대위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실혼]]에 들어갔으므로, [[금혼]] 규정[* 금혼 학칙은 구한말 [[이화학당]]을 세운 미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소녀들을 강제 [[조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시집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선교사들은 부모들을 간절히 설득했고, 심지어 방학 중에 억지로 결혼하여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소녀들도 있어, 방학을 없애기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금혼 학칙으로 인해 중퇴해야 했던 여성 중 유명한 사람들이 바로 [[전두환]]의 아내인 [[이순자]], 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작가 [[강신재]], 배우 [[김혜자]] 등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금혼 학칙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었고,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금혼 학칙을 폐지했다.]이 있던 [[이화여자대학교]] 학칙에 따라 이현란은 중퇴로 처리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금혼 학칙이 없어도 결혼을 이유로 자퇴하는 여대생들이 매우 많았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결혼한 뒤로도 학교를 다니면 이상한 눈초리로 볼 지경이었다. 그 실례로 소설가 [[박완서]]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교를 다니기 어려워지자 잠정적으로 무기한 휴학했다가, 결혼하면서 대학을 중퇴했다. 이런 인식은 국민들이 점점 열린 사고를 가지게 되면서 1990년대부터 잦아들어, 2000년대에 와서는 재학 중에 결혼해도 학교를 계속 다녀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