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현세 (문단 편집) == 생애 == [[1954년]] [[9월 19일]]에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생.[* 출생 당시는 [[강원도]] [[울진군]]으로, [[1963년]]에 [[경북]]으로로 편입되었다. 유년기에서 고교([[경주고]] 출신) 시절까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성장하여 [[경주시]]를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경주고등학교]] 졸업. 원래 장래희망은 [[화가]]였고, 미술적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소묘]] 그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져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정통 실력파이자 극화체로 봐서는 현존 만화가 중에 1, 2위를 다툴 정도의 실력파.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 일본 만화를 국내 실정에 맞게 베끼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많은 종류의 그림들을 모사하다 보니 자신의 독특한 그림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파란 만장한 개인사 이야기는 사실 어깨동무 등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데 그게 각각 달랐는데, 당시 [[메카시즘]]으로 인한 [[연좌제]]가 서슬퍼렇던 시절이라서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어깨동무나 인간극장 재연드라마에 의하면 큰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병으로(어깨동무) 혹은 군대에서(인간극장)[* 90년대 만화가 소개 서적에는 [[국민방위군 사건]]의 희생자라고 했다.] 사망했고, 생부는 군 미필을 위한 도주로 장기적으로 가출 상태였다고 한다. 문제는 2011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혔단 건데, [[일제강점기]] 때 돈 벌려고 만주로 간 둘째 큰아버지가 [[6.25 전쟁]] 때 '''[[조선인민군]] 장교'''로 돌아왔고, 수복 후에 그게 문제가 돼서 큰아버지가 [[헌병대]]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부역자]]로 몰려서 처형되고 시체가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집안사 탓에 이현세는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큰어머니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친부는 작은아버지로[* 이현세가 9살 되던 때, [[경주역]]에서 일하다가 발 밑에 있던 전선을 보지 못하고 밟으셔서 감전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때 삼촌인 줄로만 알아서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장례식장에 얼굴도 안 비췄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화는 [[이현세]]의 자서전 '[[고등어]]와 크레파스'에 나와 있으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자서전이다.][* 이때 있었던 일도 안타깝기 그지 없는데 어린 [[이현세]]가 크레파스 산다는 핑계로 작은 아버지(친부)에게 용돈을 받았지만 노는데 써버린 후 다시 작은 아버지에게 용돈 준다고 하셨는데 안주셨다고 거짓말해서 다시 돈을 받아 [[크레파스]]를 샀다. 그리고 그날이 작은 아버지가 사망해 [[이현세]]가 산 [[크레파스]]를 결국 보지 못하고 말았다. 친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거짓말이었으니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이현세]]의 가슴에 얼마나 사무쳤을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친모는 작은어머니로 알고 자랐고, 이 사실을 스무살 무렵에야 알게 되어 오랫동안 방황했다. 헌신적인 두 어머니는 그런 [[이현세]]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었고, 그 덕분에 이현세는 방황하는 중에도 [[만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4월 15일 [[이현세]]의 집을 침입한 10대 강도 2명이 돈 60만원을 훔치고, [[이현세]]와 아내를 위협하고 난 후 [[이현세]]의 큰어머니를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을 겪기도 하였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41500289123007&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8-04-15&officeId=00028&pageNo=23&printNo=3167&publishType=00010|기사]] 이후 범인들은 같은 해 5월 19일 검거된 후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8092600329115009&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8-09-26&officeId=00032&pageNo=15&printNo=16549&publishType=00010|9월 26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현세 노모 살인사건]] 문서 참조. 대학을 못 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언급되고 있는데, 일단 이현세 자신은 색약으로 인해 [[미대]] 진학을 못 했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2014년 6월 28일 [[안동]] 특강에서 스스로 이렇게 밝혔다. 생활고로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토크쇼 '땡큐'에서는 생활고도 생활고였지만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 커서 대학을 갈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대학을 못 갔지만 지금은 [[대학교]] 교수가 되어 교정을 누비고 있으니, 어찌 보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