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홍장 (문단 편집) === [[출생]]과 성장 === [[청나라]]의 [[안후이성]] [[허페이시]] 출신이며 [[한족]]으로 [[신사(중국)|신사]]층(= [[상류층]]) 출신이다. 아버지 이문안은 [[진사]]였고, 전 세대의 유학자인 [[증국번]]의 지인이었다. 1844년 향시를 통과한 뒤 [[베이징]]에서 증국번의 직계제자가 된다. 층층시하로 보는 과정을 거쳐, 1847년에 [[진사]]가 되었고, 진사 출신에서도 최고 등급이 임용되는 [[한림원]] 관리에 임명되었다.[* 진사 출신 중 특별히 높은 등수로 합격하면 한림원으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여기서 '''진사'''는 [[조선]]에서의 의미[* [[조선]]에서는 '향시 합격자'를 의미한다.]와 달리 '''과거 시험 최종 합격자'''로 황제 앞에서 등수만 가리는 시험인 전시를 볼 수 있는 인물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생원 • 진사에 해당하는 것은 중국의 [[수재#s-1]]나 [[거인(동음이의어)#s-2|거인]]이고 '''지방 시험에서 합격해 베이징과 난징에서 열리는 과거 시험(회시)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거인(동음이의어)#s-2|거인]]'''이라고 했다. 거인이면 [[사대부]] 취급을 해주고 지방에선 [[유지]]로 행세할 수 있었다.[* 단순한 유지가 아니라 지금의 [[한국|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지자체]]의 [[부지사]]라든지 국장 같은 요직을 할 수 있었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관을 임명하면 그 지방관이 파견되어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실무 관료들을 지방관 직권으로 구성했는데 거인 출신들이 그런 자리를 많이 역임했다. 물론 중국이 거대한 나라인 만큼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리였다.] 물론 회시를 거치지 않고도 하급직이나 납연[* 돈으로 벼슬 임용을 합법적으로 행함.]이 가능했다. 진사 출신은 [[명나라|명]] • [[청나라|청]] 시대 과거 시험을 거친 최고 [[엘리트]]였다. 그 당시 중국의 과거 시험은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경쟁률이 높았고, [[청나라]] 때는 인구도 대폭 늘어난데다가[* [[명나라]] 말기에 1억 근처이던 중국 인구가 이미 4억이 되어 있었다.] 만주인 우대로 한인들은 관료로 들어갈수 있는 문이 더 좁아졌기 때문에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뚫고 나온 것과 비슷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