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회택 (문단 편집) == 여담 == * 이회택 본인은 감독 생활에 대해 자신은 별로 감독과는 맞지 않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했다고 말한다. 남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었고 1년마다 선수들을 정리하고 그래야 하는데 다 제자들인데 그런 일을 하는 게 적성에 안 맞았다고... 전남 감독으로 복귀한 것도 그냥 경제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 이렇듯 감독직에 나름대로 초연한 것도 그렇고 선수 시절 유명했던 성깔과는 달리 감독 시절에는 비교적 덕장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이회택이 대단한 점은 최소한 90년대 이후부터는 매우 꾸준히 일관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냉정하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잘 나갈 때나 좋았던 때의 기억은 어떻게 보면 허풍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로까지 입담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본인의 단점이나 잘못했던 점 등에 대해서는 몹시 초연하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본인 입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젊었을 시절 성깔따라 옛날 감독들에게 대들었던 것이 마음에 남아서 그렇다고 한다. 특히 본인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인 이란전에서 전반 45분 끝나고 교체당하자, 3년만의 국가대표 복귀였기도 하고 의욕이 앞서 있었던지라 당시 감독이던 최정민에게 대들었는데[* 소문으로는 축구화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난리를 피웠다고 하나 본인 증언으로는 교체 지시를 받고 그냥 흙묻은 축구화를 바닥에 세게 몇 번 털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교체가 맞았었고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여러모로 후회가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감독할 때는 선수들이 대들어도 업보려니 하는 마음으로 감독직을 했다고 한다. * [[2005년]] 대한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레전드|최초 헌액된 7인 중 한 명]]이다.[* 나머지 6명은 [[김용식(축구인)|김용식]], [[김화집]], [[홍덕영]], [[차범근]], [[정몽준]], [[거스 히딩크]].] * 선수 시절 [[말레이시아]]에서 경기를 갖는데 코너킥을 차러 갔더니 자신이 서 있는 옆으로 [[루이스 피구|유리병이 날아왔다]]고 한다. 이에 발끈해서 코너킥을 골대 쪽이 아니라 관중석으로 향해, 그것도 캐논슛을 내지르고 퇴장당해 경기장에서 나갔던 적이 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선수를 팼다는 얘기도 있다. [[효창운동장]]에서의 경기였는데 1:1 수비를 붙여서 경기 흐름이고 뭐고 그냥 자기만 따라다니니까 짜증나서 심판 안 보는 틈을 타서 대놓고 팬 다음 좀 떨어져서 다니니까 득점을 기록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축구판 더럽다고 머리 밀고 절간에 들어갔다거나, 석유 장사를 시작했다가 망하고 다시 그라운드에 복귀한다든가, 감독과 자주 다퉜다든가 등등 여러 희한한 기행을 벌이곤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보통 이러면 경기력이 떨어져야 하는데 타고난 몸이 좋아서 그러지는 않았다고... 77년 국가대표 은퇴할 때도, 오랜만에 뽑히는 바람에 전날밤 긴장해서 잠을 설쳐 컨디션이 안 좋아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해 교체당하자 감독인 최정민 앞에서 축구화를 바닥에 내려치고 은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 한때 [[이동국]]이 이회택의 조카라서 빽으로 대표팀에 뽑힌다는 설이 퍼진 적이 있는데, 당연히 개소리다. 참고로 이동국은 [[조 본프레레]] 감독 시절 [[정몽준|회장님]]께서 감독을 불러다가 친히 이동국을 지목하면서 빼라고 했을 정도로 외압의 피해자면 피해자지 수혜자는 아니다. * 이렇듯 이회택은 본인의 불같고 화끈한 성깔로 인해 나이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인터뷰를 시원시원하게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언론에서 물어보는 것도 있어서 특히 스트라이커 평가는 좀 많이 한 편이다. [[황선홍]]은 본인이 충격 발탁을 한 선수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힘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기술이 탁월했다고 말한다. [[김은중]]은 재능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컸다고 평가한다. [[정조국]]은 나름대로 자질은 있지만 근성과 순발력이 부족하다고 하며, [[김동현(1984)|김동현]]은 힘은 있지만 기술이 모자란다고... [[박주영]]은 축구 지능, 기술, 경기 운영 능력을 겸비한 그 재능은 분명히 남들과 다르고 탁월하지만 정말 최고의 천재라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이정협]]은 기술은 없지만 오프 더 볼과 침투 타이밍은 아는 선수라고 말한다. 이동국은 슈팅력이 탁월하고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근성이 부족해서 재능을 다 피우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국가대표 선수는 궤도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본다. [[황의조]]는 2018년 재능이 터지면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듣는 [[황희찬]]에 대해서는 자신과 비교가 안 되며 스피드와 저돌성 폭발력은 비슷하지만 오프더볼과 골 결정력은 자신이 더 낫다고... 아무튼 이회택은 자신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스트라이커의 계보로 [[차범근]] - [[최순호]] - 황선홍 - 이동국을 꼽는다. * 이산가족으로, 양친 없이 조모 밑에서 자랐다. 1990년 평양에서 개최된 [[경평대항축구전|남북통일축구대회]] 당시 선수단 고문 자격으로 동행해 부친 이용진과 무려 '''40년''' 만에 극적인 상봉을 이뤄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신 바 있다. * 사위는 지금은 은퇴한 농구선수 [[윤영필]]이다. 중학생인 외손주가 축구부 소속으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 * [[조용필]]과의 인연도 아주 유명한 이야기. 조용필이 무명 시절 '25시'라는 그룹에서 퍼스트 기타를 치고 있을 때 처음 만나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그 후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대표곡으로 한 정규 1집을 만드려고 할 때 첫번째 매니저를 자처하며 록밴드 '영사운드' 출신의 제작자 안치행에게 음반 제작을 부탁했다고. * 원로 배우 [[강부자]]와 친분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