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후락 (문단 편집) === 10.26 사태 이후 === > '''[[권력|떡]]을 만지다 보면 [[뇌물|떡고물]]이 손에 묻는 법이다.''' 그러나 그해 [[10.26 사태]]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정풍 운동을 주도한 [[박찬종]], [[남재희]], [[오유방]], [[정동성]]에 의해 김진만과 함께 정풍 운동의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신군부]] 세력에 의하여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자 해외에서 귀국하지 않고 버티다 신군부 측에서 김종필의 부정축재에 대해 증언해주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하자 승낙하고 김종필이 연행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이 때 부정축재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 자금을 떡고물에 비유해 "떡고물 안 흘리고 [[떡]]을 주무를 수 있나"라는 항변으로 [[재산]] 형성을 자기 합리화해 대중들을 경악시키기도 했고, 당시의 '떡고물' 발언이 지금도 세간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당시 신군부의 추정에 따르면 이후락의 재산은 자기 명의로 알려진 것만 해도 약 194억 원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군인으로 [[전역]]한 사람이 20년 만에 저 돈을 모았다는 것이니, 당시 [[정경유착]]을 비롯한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물가]]를 따질 때 흔히 나오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의 [[한보그룹|한보]] [[대치 은마아파트|은마아파트]] 분양가가 1980년대 초반 당시 2,000만 원대로 지금은 20억 원대 매매가를 자랑한다.[* 당시 은마아파트는 고분양가 논란으로 미분양된 아파트였고, 보통 서울 중심부 아파트는 1,000만원 선이었다.] 그것으로 계산하면 이후락의 재산은 현재 화폐 가치로 대략 조단위의 금액이고, 이 외에도 시가가 낮게 매겨져서 재산 계산에 미미하게 반영됐지만 현재 폭등한 경기도내 부동산의 가치만 해도 역시 조단위로 엄청나다. 결국 1980년 4월 7일 정풍 운동을 주도한 [[박찬종]], [[오유방]], [[임호(정치인)|임호]] 등과 함께 민주공화당에 제명되었고, 그 해 7월 4일[* 여담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이 일어난 지 8년이 되는 날이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정치 규제를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