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후락 (문단 편집) === 제10대 국회의원 === 1978년 12월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고향]]인 울산시·울주군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투표율 1위로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는 한 선거구에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후락과 [[악연]]이 있던 신민당 [[최형우(정치인)|최형우]] 후보도 동반 당선되었다(...).] 이후락은 당연히 민주공화당 [[공천]]을 원했으나 [[김대중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었던데다가 여러 [[불법]]적인 정치 공작에 관여한 것도 있어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박정희와 민주공화당 측에서 공천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락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각하께서 체면 때문에 공천을 안 주신거고 국회의원 당선 후 다시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남북]] 대화를 맡는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선거 운동을 했고 이것이 먹혔다. 당시 [[울산광역시|울산]]의 [[지방공무원]]과 경찰 등도 모조리 이후락 편을 드는 바람에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았던 서영수는 명색이 여당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취급을 받고 결국 선거에서 떨어졌다. 1979년 6월 [[최치환]], [[김진만(정치인)|김진만]], [[변정일]], [[김수(정치인)|김수]], [[박용기]], [[함종빈]], [[박정수(정치인)|박정수]], [[정휘동(정치인)|정휘동]], [[임호(정치인)|임호]], [[임영득]], [[한갑수(정치인)|한갑수]], [[홍성우(1941)|홍성우]], [[권오태]], [[윤재명]] 등과 함께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