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도네시아/역사 (문단 편집) ==== 들리 술탄국 ==== 수마트라 북동부([[북수마트라|북수마트라주]] 지역)에는 [[바탁인]]의 일파인 [[카로인]](Karo)의 [[아루 왕국]](Kerajaan Aru, 1225–1613)이 있었는데, 이 지역의 카로인은 힌두교와 불교를 조금씩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와 동시에 오랫동안 인도화에 저항하며 토착 정령 신앙(프므나Pemena)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루 왕국은 14세기 중반 마자파힛의 해상 원정으로 마자파힛에 복속하였다가 마자파힛이 약화되며 다시 독립하였다. 일찍이 13세기부터 이슬람화도 시작되어, 정화 함대가 원정하였을 때는 이미 아루의 왕과 신민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영애승람》(瀛涯勝覽, 1416)에 기록되어 있다. 《동방지》에도 아루는 식량과 [[장뇌]], [[안식향]](benzoin), 금 등 물산이 풍부한 왕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북서부의 아체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아루는 1539년에 수도인 무역항 른탕(Kota Rentang)을 아체에 빼앗기고 내륙으로 세력 중심을 옮겼으며, 근근이 존속하다 1613년 아체 정복군주 [[이스칸다르 무다]]의 원정으로 멸망하였다. 이스칸다르 무다는 1632년 고차 팔라완(Gocah Pahlawan)에게 아루 지역을 주어 다스리게 하여, 아루의 고토에서 아체의 봉신국으로 들리 술탄국(Kesultanan Deli[* [[자위 문자]]로는 'دلي'으로, 이는 '델리'가 아닌 '들리'로 읽는다.], 1632–1946)이 창건되었다. 그러나 아체가 이스칸다르 무다 사후 약화되자 들리는 1669년 아체에서 독립하여 말라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세력과 친선 관계를 구축하였다. 들리 지역은 18세기 초 계승 문제로 내전을 치르는 등 내부 정치가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장뇌, 안식향, [[백단향]] 등의 원산지로서 동남아시아 무역 체제에서 오랫동안 구축된 입지를 이용하여 꾸준히 경제적 부를 누렸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별로 강하지는 못하여 [[조호르 술탄국]]이 세력을 확장하자 이에 줄곧 복속한 상태로 있다가 1854년 아체의 원정으로 다시 아체의 종주권을 받아들이게 된다. 1862년부터는 들리가 네덜란드의 보호국이 되었다. 네덜란드인은 들리 지역에서 토착 귀족들과 협력하며 [[담배]] 플랜테이션을 차렸다. 1942년, 일본군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였을 때 이 지역 귀족의 특권을 빼앗고 네덜란드인을 쫓아냈다. 귀족들은 빼앗긴 특권을 되찾기 위해 구 네덜란드 세력과 협력하며 독립파와는 자연히 소원해지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앞잡이로 평판이 나쁜 토착 귀족들에 대한 반감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차츰 확산되어 가다가, 마침내 1946년 들리를 비롯한 수마트라 북동부에서 대대적인 반귀족, 반왕정 사회 운동 '동수마트라 사회 혁명'(Revolusi Sosial Sumatera Timur)[* 여기서 '동수마트라'는 [[메단]]을 중심으로 하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행정 단위로 대략 현대의 북수마트라주에 해당한다.]이 발발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귀족이 살해당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런 가운데 들리 술탄국은 1946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에 가입함으로써 실질적인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였다. 그러나 들리 술탄직 자체는 2019년 현재까지도 남아 있으며, 현재 들리 술탄은 2005년 7월 22일에 즉위한 술탄 마뭇 라만지지(Sultan Mahmud Lamanjiji)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