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도네시아/역사 (문단 편집) ==== 블람방안: 중세 ==== 최동단 [[블람방안 반도]]를 포함한 자바 극동 지역은 13세기에도 벽지로 여겨졌다. 마자파힛 제국 건국 시에 초대 황제 라덴 위자야는 자신을 도와준 마두라의 영주 아랴 위라라자(Arya Wiraraja)에게 1295년 이 지역을 포상 차원에서 영지로 주었으며, 아랴 위라라자는 이 지역에서 루마장(Lumajang)을 지방 수도로 하였다. 이후 자바 극동부는 14세기 마자파힛 전성기에는 마자파힛의 한 지방으로 존속했지만, 중앙에 표면상으로 복종하며 실질적인 자치를 누렸다. 15세기 마자파힛이 여러 차례 내란을 겪을 때 이 지역을 통치하는 영주는 점차 중앙정부의 통제를 거부하고 독립성을 주장했다. 마자파힛 약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마자파힛 제국#레그렉 전쟁|레그렉 전쟁]]이 바로 자바 극동부의 주권을 놓고 벌어진 내전이었다. 15세기 말 마자파힛이 장기화된 내전으로 붕괴되는 시점에 극동부 블람방안 반도는 완전히 독립하여 블람방안 왕국이 되었고 파나루칸(Panarukan) 항구와 그 주변 지역이 왕국의 중심부로서 수도 기능을 하였다. 16세기 말이 되면 블람방안 왕국은 자바에서 힌두–불교 세력의 마지막 보루이자, 이슬람 자바와 힌두 발리 간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세기 말 포르투갈령 [[말라카]]에서 온 선교사가 파나루칸 항구를 방문하였을 때, 파나루칸의 블람방안 세력이 이슬람교도 세력인 수라바야 공국과 그와 연합한 파수루안(Pasuruan) 지역 무슬림 지배자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블람방안 왕국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자바 내륙과 발리 세력 간에서 줄타기하며 존속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