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도네시아/역사 (문단 편집) === [[수하르토]] 시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인도네시아/정치, 앵커=수하르토 시대)]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수하르토)]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oeharto.jpg]] [[수하르토]] 대통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May_1998_Trisakti_incident.jpg|width=600]] 수하르토는 반공정책을 기본으로 하여 수카르노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식 민주주의 '판차실라'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했고,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을 지휘하고 지방의 독립운동을 억눌렀다. 수하르토 치하에서 인도네시아는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며 1983년 들어 쌀 수입국을 수출국으로 위상을 바꾸는 등 성과를 이루었으며, 수카르노의 독재 시절보다 나라 살림은 나아졌다. 이때 수하르토는 1969년까지 동남아시아 공산화를 두려워한 서구 국가들의 묵인 하에[* 2017년 미국 묵인 정황이 담긴 주 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 기밀문서가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710181794826357?backAd=1|공개되었다.]]] 100만명이 넘는 정적들을 학살했는데, 사망자 대다수가 자바 및 발리 출신이었다. 희생자 유가족 등은 1999년 'YPKP65'를 결성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운동에 나섰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학살 책임자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쉬쉬하고 있고, 후임 정부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고 군부도 이들의 진상규명/명예회복 운동을 [[http://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43848.html|철저히 방해하고 있다.]] 이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에서 상세히 다뤄졌다. 심지어 수하르토는 언론을 장악하고 이에 반대하는 재야언론이나 재야학자들의 연구를 통제하고, 어린 학생들에게도 '판차실라' 논리를 암기토록 하여 국민들의 머릿속을 철저히 세뇌시켰다. 의회는 친정부세력으로 채워진 데다 정치인들 간에 이간질을 유발시키고 무력사용까지 서슴지 않았고, 정부 요직 등에 친인척들을 기용시켰다. 그러나 수하르토의 장기 통치와 독재, 부정부패, 족벌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고, 결국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 경제가 마비되고 IMF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되자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고 수하르토는 결국 1998년 퇴진했다.[* 1997년 태국의 고정환율제 포기가 방아쇠가 돼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달러화 유출, 자본이탈이 일어나면서 각국의 외환보유고가 절망적인 수준까지 떨어졌다. 결국 7월에 태국, 10월에 인도네시아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사실상 국가의 경제 주권을 포기했다. 이 불길이 한국까지 옮겨와서 미국, 일본에 지원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한 대한민국 정부도 12월에 IMF 구제 금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흐름은 계속 이어져서 이듬해 1998년에는 외환이 바닥난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외환보유고가 풍부하던 싱가포르와 대만,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경제가 일시에 큰 타격을 받았는데, 이중에서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 총리가 IMF 구제 금융을 거부하고 독자 노선으로 경제 회복에는 성공했으나, 이후 성장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