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력거 (문단 편집) === 노동의 강도 === 보는 입장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끌다니 굴욕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만주국]]이나 [[중국]] 동부에 대거 이주한 [[일본인]]들의 자손들이 일본으로 귀환하거나 방문했을 때, 일본인이 인력거를 끄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그 예.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수필이나 [[미라이 공업]] 창업주 [[야마다 아키오]]가 쓴 책[* 국내에도 발간되었다.]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주요섭]]이 쓴 동명의 소설 《[[인력거꾼(소설)|인력거꾼]]》에는 매일같이 지나친 뜀박질을 하는 탓에 인력거꾼은 9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당시 주요섭은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아 [[카프]]계열의 작품을 많이 썼고, 소설 《인력거꾼》도 카프쪽 작품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충격적으로 묘사해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드려는 경향이 보인다. 따라서 작품 내 인력거꾼의 힘든 생활도 다소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작가들이 이를 쓸 만큼 대중적으로 공감이 될 만한 하층 직업으로 보던 점도 있다. 그런데 의외일지 모르지만 일 자체는 그렇게 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력거 자체가 상당히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서 언덕만 없으면 큰 힘이 들지 않는데[* 잘 만들어진 인력거는 손잡이를 놔도 수평을 유지할 정도로 무게중심이 잘 잡혀있다. 따라서 손잡이를 위나 아래로 지탱할 필요없이 앞으로 밀기만 하면 된다.] 인력거가 주로 다닌 길은 한중일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대도시의 평평한 도로였다. 중국에서 나온 공산화 이전 인력거꾼을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고된 농사일이나 [[막노동]]에는 아예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수입 또한 5인 가족이 도시 빈민가에서 간신히 생활을 꾸릴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도시 빈민층 중에서는 오히려 괜찮은 직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인력거꾼은 대개 [[교대근무|4교대제]]로 일했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 일하면 되었고 결원이 나기를 기다리는 지원자들로 항상 북적거렸다고 한다. 정비석의 소설 '졸곡제'에서 그런 모습들이 조금 비춰지는데, 지게꾼인 주인공이 손님이 계속 있고 돈도 꾸준히 버는 인력거꾼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이 그런 장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