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상여 (문단 편집) === [[화씨지벽]]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7s300048r4o661ss1p6.jpg|width=100%]]}}} || || {{{#000000 인상여의 화씨지벽 사건을 나타낸 동상 }}} || 인상여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사건은 화씨지벽을 진나라로부터 온전히 돌려받아온 사건이다. 화씨지벽의 소문은 멀리 국경을 넘어 당시 진나라 [[소양왕]]마저 이를 듣게 되었고, 조나라 혜문왕에게 화씨지벽과 진나라 성읍 열 다섯개를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문제는 당시 소양왕은 초나라 회왕을 진나라로 초대했다가 억류하여 끝내 객사하는 원인을 제공한 적이 있는 등 [[다케다 신겐|약속을 지킨다고 믿기는 어려운 인물]]이었고, 옥 하나를 대가로 성 15개를 순순히 준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소양왕의 제안을 거절하자니 당시 소양왕이 다스리는 진나라는 중국의 전국 7웅 가운데 최강의 강대국이었기에 함부로 진나라를 거스르면 나라는 나라대로 망하고 화씨벽까지 뺏길 상황이었다.[* 이 때 조나라도 [[조무령왕]]에서 [[조혜문왕]]으로 이어지는 리즈시절을 구가하고 있었는데도 진나라에 비빌 수가 없었으니, 진나라는 이미 나머지 육국에게 큰 위협이 될 정도로 최강국이었던 셈이다.] 갈팡질팡하던 조나라 조정은 결국 소양왕과 교섭하기 위해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사신을 파견하기로 했으나 적임자가 없었다. 이에 무현이 예전에 뛰어난 지혜로 자신을 구해주었던 인상여를 천거하자 조왕은 인상여를 불러 물었다. ||「진왕이 15개의 성과 과인이 갖고 있는 화씨벽을 바꾸자고 했소. 화씨벽을 보내야 되겠소? 아니면 보내지 말아야 되겠소?」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왕이 우리의 화씨벽만을 취하고 성을 넘겨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진나라가 성을 준다고 하면서 화씨벽을 달라고 했으니 우리가 주지 않는다면 그 허물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화씨벽을 주었으나 진나라가 성을 주지 않는다면 그 허물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계책을 저울질해 볼 때 마땅히 화씨벽을 주고 그 허물을 진나라에 있게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사자로 보내야 되겠소?」 「대왕께서 마땅히 보낼 사람을 찾지 못하시겠다면 신이 원컨대 화씨벽을 받들어 사자로 가겠습니다. 성이 조나라에 들어온다면 마땅히 화씨벽을 진나라에 두고 오겠지만, 성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화씨벽을 온전하게 보전해서 조나라에 돌아오게 하겠습니다(臣請完璧歸趙).」|| 이에 조왕은 인상여를 특사로 삼아 화씨지벽을 맡겼고 바야흐로 '''인상여의 치킨 게임 전설이 막을 올렸다.''' 진나라로 간 인상여는 소양왕을 알현하여 화씨벽을 바쳤다. 그런데 화씨벽을 받은 소양왕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좋아할 뿐 약속했던 15개 성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인상여는 소양왕이 애초부터 성을 내주지 않고 화씨벽만 꿀꺽할 속셈임을 간파하고, 소양왕에게 "사실 '''화씨벽에도 작은 흠집이 있습니다'''(璧有瑕). 제가 그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화씨벽을 슬쩍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문득 돌변하여 버럭 화를 내면서 기둥을 향해 화씨벽을 내던지려는 시늉을 하며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화씨벽을 깨부순 뒤 나도 기둥에 머리를 박아 죽어버리겠소이다'''. 엄숙히 경고하건데 3일의 여유를 줄 터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생각하시오. 만일 조금이라도 말에 거짓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옥을 박살내고 나 역시 머리를 박고 죽겠소."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부연하자면 당시는 전국시대라서 군신유의 사군이충 개념이 없고 군주에 대한 신하의 목숨 바친 충성 같은 것은 없는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당장 전국칠웅만 해도 주나라 왕실에 대한 하극상으로 세워진 나라니... 그런데 인상여는 '''"나라의 으뜸가는 보물을 코 앞에서 빼앗기느니 차라리 자살하겠다! 힘으로 빼앗으려면 날 죽여야 할거다! 어디 진나라 왕이 사기치려다 들켜서 외교사절 죽였다고 동네방네 소문 좀 나볼테야?"''' 라고 협박한 것이다. 특히 신하의 충성심 같은 것을 믿지 않는 법가 국가인 진나라이기에 인상여의 목숨 바친 충성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크게 당황한 소양왕은 속으로는 조바심이 났지만 할수없이 어영부영 사과하며 지도를 가리키면서 성 15개를 주겠다며 인상여를 달랬다. 물론 속셈은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였지만 '''그건 인상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상여는 "화씨지벽은 천하의 보배인 만큼 진나라로 보낼 때 조나라 왕이 5일간 목욕재계를 했으니, 소양왕도 5일간 목욕재계를 해야 마땅하며 또 받을 때에도 풍악을 울리며 경건히 받으라"고 요구했다. 소양왕은 마지못해 화씨지벽과 인상여를 숙소로 돌려보냈으나 인상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씨지벽을 은밀히 조나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5일 후 소양왕에게 가서는 천연덕스럽게 '''역대로 진왕은 한 번도 제대로 약속을 지킨 적이 없어서 화씨벽은 일단 조나라로 돌려보냈으니 성 열다섯을 먼저 준다면 화씨벽을 내주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저는 대왕을 기만했으니 [[팽형]]에 처해달라."는 말까지 했다. 당연히 진나라 신하들은 격분해서 인상여의 소원대로 처형하자고 아우성을 쳤고 --5일 동안이나 목욕하며 기다리던-- 소양왕도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인상여를 죽이려 들었지만, 진나라 재상이었던 [[범수(전국시대)|범수]]가 "인상여는 목숨을 걸어 화씨벽을 지켜낸 인걸이니, 그를 죽이면 반드시 제후들의 인심을 잃을 것입니다. 어차피 화씨벽은 조나라로 돌아갔다니 인상여도 대접해 돌려보내고 나중에라도 성과 화씨벽을 바꾸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라며 간곡히 간하여 무마시키고 사흘 밤낮 성대한 잔치를 벌여 인상여를 환송했다. 물론 소양왕이 먼저 성을 주는 일은 없었고, 인상여 역시 이를 예상한 듯이 조나라로 돌아가자마자 입을 싹 씻었으며, 인상여에게 제대로 데여 체면만 구긴 소양왕은 다시는 화씨벽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바로 이 이야기가 완벽(完璧)의 유래로, 화씨벽을 완벽(完璧 완전한 옥)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서 생겼다. 이에 대해 명나라 시기의 명사였던 왕세정은 인상여완벽귀조론(藺相如完璧歸趙論)이라는 논평에서 그의 용감하고 올바른 처사를 칭송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