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순왕후 (문단 편집) == 평가 == [[수렴청정]]을 한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에도 대신들과 [[사림]]들의 의견에 반하는 의사를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는 그녀가 [[한자|한문]]을 몰랐기 때문에 [[수렴청정|섭정]]하는 동안은 이준경을 비롯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린 [[선조(조선)|선조]]를 보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성종(조선)|성종]]의 [[수렴청정]]을 한 대왕대비 [[정희왕후]]도 [[한자|한문]]을 몰랐지만 정사를 이끄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문정왕후]]와 같은 선례를 경계한 집권 [[사림]]의 압박도 있었던 모양, [[수렴청정]]을 시작하고 6개월도 안 돼서 백인걸을 비롯한 사림들이 '대비는 정권을 [[선조(조선)|주상]]에게 돌려줘야한다' 라는 의견을 비추었는데 인순왕후는 이를 듣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나마 남동생인 [[심의겸]]이 조선 후기까지 쭉 이어지고 정말로 본격적인 '''[[붕당 정치]]'''를 탄생(?)시켰으나 그 원인이었던 이조전랑 문제가 발생한지 불과 1년 뒤에 [[죽음|승하]]했기 때문에 [[서인]]들에게 힘이 되질 못했고 설사 더 오래 살았어도 [[문정왕후]]의 예를 생각하면 함부로 개입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문정왕후]]이어서 시어머니의 권세 때문에 제대로 [[왕비]] 역할을 못했다. 그녀의 유일한 아들이 있는데 그녀가 20세 때 [[순회세자]]를 출산했지만, 워낙 [[순회세자]]가 병약해서 그런지 젊은 나이에 그만 [[죽음|요절]]하고 말았다. 남편 [[명종(조선)|명종]]과 사별하고 [[양자(가족)|양자]]인 [[선조(조선)|선조]]의 법적 모후로서 [[수렴청정]]을 하면서 인순왕후는 척신(외척)을 멀리하고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와 같은 도학정치(왕도정치)를 꿈꾸는 [[사림]]들에게 기회를 크게 주었다. [[선조(조선)|선조]] 초기 유능한 인재가 많았던 것은 인순왕후의 사심이 없던 공적인 처신에서 나왔다.[* [[선조수정실록|실록]]의 내용을 보면 그녀의 [[수렴청정|섭정]] 8개월은 모두 인사등용과 [[문정왕후]] 시절 파직당한 [[사림]]들의 신원에 관한 것들이다.] [[심의겸]]이 인순왕후의 친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이 약했던 것도 인순왕후가 권력에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붕당 정치|붕당]]이 일어날 당시에 이미 인순왕후가 [[사망]]한 것도 분명 있었다. 인순왕후 본인이야 욕심이 없다지만 선조 입장에서는 방계인 자신을 국왕으로 만드는데 인순왕후의 역할이 컸으므로 인순왕후가 오래 살았다면 그녀의 눈치를 봐서 서인에게 힘을 더 실어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붕당 정치의 시초에 있어서 판도가 달라지거나 최소 늦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녀의 인지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보다는 '''[[임진왜란|조선사 500년을 통틀어 최대의 빅 이벤트]]'''가 [[선조(조선)|선조]] 대에 크게 터져버려서 그런 탓도 있다. 당장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이덕형]], [[이원익]], [[이항복]], [[이산해]], [[정철]], [[류성룡]] 등 조선사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의 정치인들이 [[선조(조선)|선조]] 치세에 숨막힐 정도로 들어차 있으며, [[오성과 한음]]이나 [[신사임당]]과 같이 나름대로의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도 상당히 많으나 '''이들을 다 합쳐도 [[충무공 이순신]] 하나의 인지도에 한참 못 미칠 지경'''이니[* 저들을 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지간하면 [[이순신|충무공]]은 안다.], '''선조 = 임진왜란의 등식'''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부분이며, 동시에 [[임진왜란]]과 추호도 상관없는(...) 인순왕후는 자연스럽게 인지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남동생인 심의겸도 붕당정치의 시초격이 된 사람치고도 그닥 유명하지 않은 탓도 있다. 가계에 대한 흥미로운 부분이 발견된다. 인순왕후의 모친, 완산부부인 이씨를 보면 본관부터 심상치 않은데[* 완산은 [[전주시|전주]]의 이칭이다. 다시말해 [[전주 이씨]]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인순왕후의 외가쪽 5대조가 다름아닌 [[효령대군]]이며, 6대조가 [[태종(조선)|태종]]이다.[* 전성군 이대-여양군 이자겸-율원군 이종-보성군 이합-효령대군 순] [[세종(조선)|세종]]과 [[효령대군]]이 동복 형제임과 동시에 거슬러 내려오면 완산부부인 이씨는 사돈인 [[중종(조선)|중종]]과는 11촌이라는 의미이다. 각각 그 자녀들인 [[명종(조선)|명종]]과 [[인순왕후]] 심씨는 [[조선/왕실|조선 왕실]] 기준으로 13촌으로서, 8촌이 넘어가기에 남남에 가깝지만 친인척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명종(조선)|명종]]의 5대 조모, [[세종(조선)|세종]]의 [[왕비]]는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인데 소헌왕후의 친정 동생인 심회의 4대손이 바로 [[명종(조선)|명종]]의 [[장인어른|장인]] 심강이다. 즉, [[태종(조선)|태종]]의 후손과 [[심온]]의 후손들은 6대에 걸쳐 3차례나 혼인관계를 형성한 셈이다.[* [[세종(조선)|세종]] -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 심강 - 완산부부인 이씨, [[명종(조선)|명종]] - 인순왕후 심씨][* 막연한 추측이지만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인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요절 요인에 이런 특정가문과 짧은 기간내 반복적이고 근친적인 혼인사유가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