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조 (문단 편집) == 기타 == * 인조의 능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장릉(파주)|장릉]](長陵)'''이다.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능도 장릉(章陵)인데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있고 첫 왕비 [[인열왕후]] 한씨와 함께 묻힌 합장릉이며 [[한자]]가 다르니 주의할 것. [[삼전도비]] [[테러범]]이 다음 표적으로 타겟팅한 물망에 오른 곳들 중 하나이기도 한데 안장된 이후 조선 역대 왕 중 유일하게 엄청난 수난을 당했다. [[파일:Jangneung_Joseon_Royal_Tomb_Article_01.jpg]] * <[[조선왕조실록]]>에 탄강할 때 붉은 광채가 빛나고 이상한 향내가 진동하였으며 그 [[외모]]가 비범하고 오른쪽 넓적다리에 검은 점이 무수히 많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0103013_001|인조실록 1권, 인조1년(1623년) 3월 13일 계묘 1번째기사]]) ~~과연 제2왕조 창건자에 걸맞는 탄생 설화 분칠~~ 재위 초반에 옥체가 점점 수척해지고 [[용안]]이 검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나자 [[신하]]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언급되는데 인조는 자기 자신은 아무런 [[질병]]이 없다고 발뺌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0407007_004|인조실록 13권, 인조 4년(1626년) 7월 7일 정축 4번째기사]]) 재위 후반에 들어서는 인조의 배가 크게 부푼 증상이 일어났다.([[http://sillok.history.go.kr/id/kpa_12608002_001|인조실록 49권, 인조 26년(1648년) 8월 2일 갑오 1번째기사]]) <[[인조실록]]>에서 인조 외모에 대해 뛰어났다고 언급한 부분은 탄강할 때 그 외모과 비범했었다는 내용 뿐이다. 재위 초반에 들어서 수척해지고 [[얼굴]]이 검게 변하는 증상이 나타났고 후반에 들어서는 배가 부푸는 증상까지 나타났었다는 점에서 외모가 많이 망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인물 영조같이 대놓고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 이상, 정치판의 스트레스와 격무 등으로 인해 건강이 많이 상하고 그에 따라 외모도 망가지는 것은 현대에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 * [[야사(역사)|야사]]에 따르면 [[백성]]들에게 뒷말로 ''우리 왕은 외모 밖에 볼게 없다''라는 말이 떠돌았다는 것과 인조 외모에 의해서 미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둥 또는 오랑캐들과 [[청나라]] 사신들이 인조 외모에 감탄했다는 일화가 떠돌고 있다. 다만 이 일화들은 모두 현대에 전해지는 출처 미상의 사실 무근으로 보인다. <인조실록>에 1줄이라도 저런 일화에 대해서 언급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청나라 사서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내용이며 여러 주요 야사책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미인]]상이나 그 때문에 [[욕]]을 먹었다는 실제 야사를 참고했을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 원종의 외모가 당시에 외모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는데 초상화를 보면 현대 미남상 기준과 많이 다른 걸 엿볼 수 있다.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 어필로 행서체로 적혀 있다. 대대로 필체가 반듯한 조선 [[왕가]]의 특질은 계승된 듯.[* [[영조]]의 경우는 필체가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다만 필체를 남기는 것 자체를 싫어해 [[상소]]에 대한 비답도 [[내시]]들에게 베끼게 하여 전달했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UploadedFiles/naver_com_20101219_131947.jpg]]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서울)|오금동]]의 송파[[도서관]]에 세워진 일종의 미담 동상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 인조를 업고 피신한 나무꾼 서흔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서흔남은 <인조실록>에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로 [[대장장이]]나 [[나무꾼]]일을 하는 낮은 [[신분]]이였지만 포위된 상황에서 남한산성 외부의 근왕군과 연락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공로로 [[양반]]이 되고 [[벼슬]]까지 제수받았다. 인조를 업고 직접 피신시켰다는 [[전설]]이 가장 유명하며 인조가 피난 당시 입던 [[곤룡포]]를 하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파일:attachment/1171-A-07641_01.jpg|width=100%]]||<:>[[파일:조선 인조.jpg|width=100%]]|| || 전체 || 확대 || ||||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도서관의 서흔남 동상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