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종(고려) (문단 편집) === 붕어 === >짐(朕)은 [[천명|황천(皇天)의 권명(眷命)]]을 받들며 열성(列聖)을 이어 삼한(三韓)을 다스린지 35년이 되었다. 오늘이 되어 일이 많아 부담이 쌓이니 질병이 누적되어 치료가 소용이 없어 대점(大漸)에 이르렀다. > >오호라! [[유교|성철의 도(聖哲之道)]]는 존망을 아는 것이며 [[불교|불로의 말(佛老之言)]]은 생사를 알라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것은 이치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돌아가는 자는 변화에 순응해 남지 않고, 남아있는 자는 슬퍼하며 효를 드러내는 것은 천하의 도이다. > >아! 너 왕[[태자]](王太子) [[의종(고려)|현(晛)]]은 충효(忠孝)의 미덕을 갖추고 타고난 자질을 가지고 있으니, 덕업(德業)이 융성하여 인망(人望)을 갖추었다. 이에 마땅히 왕위(王位)에 오를 수 있도다. 제사는 하루를 달로 계산하고 산릉의 제도는 검약하게 하라. 성현의 철칙을 깊게 생각하고 조종의 영광을 저버리지 말라. > >문무백료(文武百寮)는 다 같이 협력하여 국정을 이끌어 나가고 왕가(王家)를 보우하라. 중외(中外)에 이를 포고해 짐의 뜻을 알게하라. >---- > - 《[[고려사]]》 <인종 세가> 중 발췌. 인종의 마지막 유조(遺詔)로 왕태자에게 나라를 맡기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은 탓인지 결국 38세라는 비교적 젊은 보령에 병을 얻어 [[만월대|본궐]] 보화전(保和殿)에서 붕어했다. [[야사(역사)|야사]]에는 멀쩡하던 왕이 갑자기 병이 들자 의원의 치료에도 소용이 없어 [[점쟁이]]를 불러 점을 쳤는데 '''이자겸''', '''척준경''', '''묘청''' 등의 [[귀신]]이 왕의 몸에 씌여 병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왕실]]에서는 용한 [[무당]]을 불러 굿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어 인종은 끙끙 앓다가 승하했다고 전해진다. 고려 역대 [[임금]] 중 <시책>(諡冊)이 남아있는 유일한 임금이기도 하다. <시책>은 [[옥]]으로 만들어서 <옥책>(玉冊)이라 불리기도 하고, 귀한 책이라 해서 <보책>(寶冊)이라고도 한다. 선대 임금이 죽으면 차대 임금이 선대에게 [[시호]]를 올렸고, 천자일 경우 [[묘호]]까지 올렸음을 고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이다. 흰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글자]]를 새기고 [[금]]을 채워 넣어 외관이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유물은 글자에 채운 금이 거의 긁어진 상태이다. <시책>의 양 끝에는 부월(斧鉞)을 들고 있는 호위 무장을 그려 넣었으며, 인종이 죽은 뒤 1146년 3월 [[태자]] [[의종(고려)|왕현]]이 만들어 올렸다. 자신을 신(臣)으로 표현했고, 인종이 [[묘청의 난|호경지란]](鎬京之亂)을 제압한 것을 칭송했으며, 시호 '공효'(恭孝)를 올린 이유를 설명하고, 묘호 '인종'(仁宗)을 소개하며 글을 갈무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