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해전술 (문단 편집) === 수나라 === [[여수전쟁]]에서 [[수나라]]가 113만의 대병력을 동원해서 고구려를 침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수나라 군대는 요동 방어선을 돌파하지는 못했는데도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직접 타격하였다. 간간히 고구려 유격부대의 저항을 받았지만 [[살수대첩]] 이전까지는 병력을 온전히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요동 방어선을 뚫지 못했으면서도 평양을 공격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인해전술 때문이었다. 전방 방어선의 고구려군이 우회하는 적을 그저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도 포위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어선이라는 것이 말처럼 주욱 이어진 선이 아니다. 아군이 지키는 주요 거점들을 임의로 이은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니 압도적인 숫자의 적이 와서 인근의 아군 거점을 모조리 포위하고 일부가 아군의 후위로 들어간다면 방어하는 쪽에서 손쓸 도리가 없다. 당시 [[수양제]]의 113만 병력은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 규모였다. 고구려는 무섭게도 이 모든 위협을 물리쳤지만 수도가 수나라군의 직접 공격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즉 수나라의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해전술의 요소는, * 적을 각각 포위함으로써 적의 결집을 막고 분산, 고립시킨다. * 아군의 분산으로 적의 관심도 분산시킬 수 있다. * 아군의 주공을 감출 수 있다. * 적이 분산되므로 아군은 항상 수적 우세를 점한다. 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나라도 고구려와의 교전에서 큰 피해를 보고 병력 손실이 많았다. 그래서 수나라가 망한 뒤의 [[당나라]]는 직접적으로 방어선을 돌파하기보다 지속적인 공격으로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우회기동하는 전략을 많이 취했다. 이때문에 고구려는 견디지 못하다가 끝내 멸망했고 신라도 [[나당전쟁]]에서 당나라 군의 이 전략에 크게 당하여 수도까지 위협을 받을 정도로 위기에 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