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기토/사례 (문단 편집) ==== [[삼국시대]] ==== >겨울 10월 경인 초하루 기유. 백제의 왕자 [[위덕왕|여창]]이 나라 안의 모든 군대를 내어 고려국을 향했는데, 백합의 들판에 보루를 쌓고 군사들 속에서 함께 먹고 잤다. 이날 저녁 바라보니 커다란 들은 비옥하고 평원은 끝없이 넓은데, 사람의 자취는 드물고 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마 후 갑자기 북치고 피리부는 소리가 들리니 여창이 크게 놀라 북을 쳐 대응하였다. 밤새 굳게 지키다가 새벽이 되어 일어나 텅 비었던 들판을 보니 군대가 푸른 산처럼 덮여 있었고 깃발이 가득하였다. 때마침 날이 밝자 목에 경개를 입은 자 1기, 징을 꼽은 자 2기, 표범 꼬리를 끼운 자 2기, 모두 합해 5기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와서 묻기를 “어린아이들이‘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나노리|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여창이 “성은 (고려 왕실과) 동성이고 관위는 간솔이며 나이는 29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백제편에서 반문하니 또한 앞의 법식대로 대답하였다. '''드디어 표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때 백제는 고려의 용사를 창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뜨려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머리를 창끝에 찔러 들고 돌아와 군사들에게 보이니,고려군 장수들의 분노가 더욱 심하였다.''' 이때 백제군이 환호하는 소리에 천지가 찢어질 듯하였다. 다시 그 부장이 북을 치며 달려 나아가 고려왕을 동성산 위에까지 쫓아가 물리쳤다. >---- >'''《[[일본서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보면 고대 한국에서는 전쟁이 무척 잦았으나, 일기토에 대한 묘사는 거의 전무하다. 그런데 [[일본서기]] 19권 흠명기 14년(553년)에 드물게도 한반도에서 [[고구려]]군과 [[백제]]군의 일기토 기록이 하나 남아있는데, 바로 [[백합야 전투]]에서 펼쳐진 일기토이다. 상대방이었던 고구려군 장수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여기서 백제군 장수인 부여창은 태자 시절의 [[위덕왕]]이다. 부친인 [[성왕(백제)|성왕]]이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뒤 그 죄책감으로 승려가 되려고도 했고 40여년간 재위했음에도 별다른 업적이 없는 위덕왕이지만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태자 시절엔 전쟁의 선봉을 도맡아 설 정도로 용맹했으나 부친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고 정신적으로 상당히 망가졌을 거라는 추측을 해 볼 수도 있다. > '''[[태종(당)|황제]]가 [[고구려|고려]]를 정토하면서, 조서로 [[글필하력|계필하력]]을 전군총관으로 삼았다. 백암성에 나아가, 적의 삭에 맞았는데, 창상이 심하여, 황제가 직접 약을 붙여주었다. 성을 뽑고 나서, 계필하력을 찌른 자인 고돌발을 얻었는데, 사신을 치달아 보내어 그를 자살하게 하려 하자, 고사하며 말했다 : 「저 자는 그 주인을 위하여, 흰 칼날을 무릅쓰고 신을 찌른 것이니, 이는 의로운 사인입니다. 개와 말도 오히려 그 먹인 것에 보답하는데, 황차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끝내 그를 풀어주었다.''' > (帝征高麗,詔何力為前軍總管。次白崖城,中賊槊,創甚,帝自為傅藥。城拔,得刺何力者高突勃,騶使自殺之, > 辭曰:「彼為其主,冒白刃以刺臣,此義士也。犬馬猶報其養,況於人乎?」卒舍之.) > ---- > [[신당서]] 권110-06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글필하력전(契苾何力傳) 中 또한 중국 측 기록인 신당서에서는 당나라 태종의 장수 글필하력과 [[고구려]] 장수 [[고돌발]]의 단기 접전 상황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고돌발의 직급은 알 수 없지만, [[태종(당)|당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무예가 뛰어나고 용맹한 [[철륵]] 출신 총관 [[글필하력]]을 창으로 찔러 떨어 뜨린 것으로 보아, 무예가 뛰어난 장수로 추측된다. 또한 정황상 오골성 출신 혹은 오골성에 주둔하고 있던 장수로 위기에 빠진 백암성을 구원하러 긴급히 출동하였던 [[기병]]으로 판단되며, 이에 글필하력의 철륵 출신의 [[당나라군]]과 백암성 부근에서 교전 후 백암성에 입성하였던 것으로 역시 추측된다. 어쨌거나 이 일기토 기록 하나 덕분에 고돌발은 [[고구려-당 전쟁]]을 다루는 고구려 말기 한국 역사극에는 한번씩 얼굴을 비치는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