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라 (문단 편집) === 개요 === 한국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서기]]》에서만 등장한다. 일본서기의 서술이 대체로 그렇지만 일종의 신화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으며 일본 측 중심적으로 조금씩 고쳐 썼기 때문에 실제 아들인지, 그리고 상세한 행적이 모두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탁순국 멸망 후 백제에서 벼슬을 받아서 달솔이라는 직책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정작 아버지 아리사등은 일본서기 기록상 결국 나라를 신라에 바쳐서 백제와 왜국에게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순적인데, 훗날 [[마의태자]]처럼 아버지와 뜻이 맞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생애를 요약하면 신라에게 멸망한 [[임나]](가야)를 일본 측이 부활시키기 위해[* 당시 백제나 왜국은 신라와는 사이가 나쁘고 백제-가야-왜 연합으로 신라에 대응하려 했기 때문에, 6세기 후반까지는 신라에 흡수합병당한 가야를 부활시키려고 했었다. 결국 다 실패하고 7세기쯤 되면 가야 지방민들이 신라 사회에 동화되어 이런 가야 부흥 시도도 끝나게 된다.] 임나의 일원이었던 탁순국 왕자인 일라를 찾아 데려오려 했으나, 일라가 일하고 있던 시기 백제의 [[위덕왕]]은 일본서기 기록상 일본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보내주지 않다가 일본 사신이 [[천황]]의 어명을 전하자 쫄아서 내주었다는 황당한 기사. 이후 천황에게 조언했다가 이를 본 백제 신하들이 죽이려 하자 몸에서 스스로 불을 내서 겁을 준 후 죽었다가 살아났다 다시 죽었다고 한다. 프로파간다 등을 빼고 정황을 분석해본다면 결국 백제인들이 백제에 붙었던 멸망한 가야 소국의 왕자를 호송해서 일본에 파견했다가 그가 다시 일본 측에 붙으려 하자 죽여버렸다는 내용인데 성왕 대에 백제가 신라에 무참히 깨지고 난 후 위상이 크게 실추되어 가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동맹이었던 일본과도 갈등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