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국호 (문단 편집) ==== [[예군]] 묘지명 '일본' 논쟁 ==== 한편, [[예식진]]의 형제인 [[예군]](禰軍, 613 ~ 678)의 묘지명(墓誌銘)이 [[중국]]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서 일본이 현재의 일본이 아닌 것으로 해석되는 명문이 나왔다. >'''일본(日本; [[백제]])의 잔당은 부상(扶桑; 왜국)에 의지하여 처벌에서 도망쳤다. 풍곡(風谷; [[고구려]])의 남은 무리들은 반도(盤桃; [[신라]])를 등에 지고 굳세게 저항하였다.''' >于時日本餘噍, 據扶桑以逋誅; 風谷遺甿, 負盤桃而阻固. >---- >[[예군]] 묘지명 中 이를 두고 도노 하루유키 교수는「예군묘지명」에서 고유한 국호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 [[예식진]]과 [[예군]]은 모두 백제 땅에 있었던 [[백제멸망전]]과 [[웅진도독부]]에서만 활동한 인물들이라는 점, 묘지명(墓誌銘)은 사료를 참고하여 편찬된 사서(史書)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업적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기 위한 일종의 시문(詩文)인데 여기서 예군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고구려]] 유민(風谷遺甿)이 [[신라]](盤桃)와 함께 [[당나라]]에 저항하는 내용이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예군 묘지명에서의 '日本'은 국호(고유명사)가 아니라 '扶桑', '風谷', '盤桃'과 동일하게 [[당나라]]의 동쪽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이라는 국호가 [[백제]]를 일컫는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고 보았다.(東野治之, 2012, 「百濟人禰軍墓誌の「日本」 등)[* 도노 하루유키(나라대) 설, [[이성시]]([[와세다대학|와세다대]]) 설] 또 일본의 국호 제정 과정에서 멸망한 백제의 유민이 중심적 역할을 했을 것[* 윤선태([[동국대]]) 설]이라는 설이 나왔다. 부상은 왜국, 풍곡은 고구려, 반도는 신라를 나타내므로, 일본은 곧 백제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 묘지명에 쓰인 日本, 扶桑, 風谷, 盤桃는 전부 '''동쪽'''해가 뜨는 곳, '''동방'''일출의 경계, '''동해''' 중의 신령스러운 산, 선도(仙桃)가 있는 '''동쪽''' 땅이라는 뜻으로 동쪽을 가르키는 신화적인 명칭일 뿐 일본=백제, 부상=왜국, 풍곡=고구려, 반도=신라 하는 식으로 1대1 해석하는 것은 몇몇 학자만 주장하는 대응식이다. 본문의 논제인 백제=일본은 논외로 치더라도, 당대에 고구려를 풍곡으로, 신라를 반도로 불렀다는 [[한국]], [[중국]], [[일본]]의 다른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며 고구려=풍곡, 반도=신라 식의 주장은 오직 예군묘지명을 논할때만 나오는 얘기이다. 예군묘지명 내 내용중 그나마 현실 국가와 매치되는 단어는 일본=부상이고 [[고대]], [[중세]] 사료에서 [[부상]](扶桑)이 일본으로 사용된 예가 많은 것은 맞으나 이를 근거로 「예군묘지명」의 부상(扶桑)을 일본으로 곧바로 해석하기에는 '부상'이 일본 외 다른 국가를 표현한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작성한 당대 기록인 당평백제국비(唐平百濟國碑) 비석(백제 멸망 직후인 [[660년]] [[8월 15일]]에 제작)에서는 [[백제]]를 부상(扶桑)라고 부르면서 '평정하였다'("却翦扶桒")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삼국유사]] 권 제3, 제3 흥법(興法第三)에서는 "옛날 [[법흥왕|법흥대왕]]이 자극전(紫極之殿)에서 즉위하고 부상(扶桑)의 땅을 굽어 살펴보고 말씀하시기를(昔在法興大王垂拱紫極之殿俯察扶桑之域以謂)" 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때 [[법흥왕]]이 왕으로 즉위한 이 부상(扶桑)은 당연히 [[신라]]이고 [[7세기]]경 편찬된 양서(梁書) 54권 「제이전(諸夷傳)」에서 묘사된 [[부상국]]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동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제3의 국가로 묘사된다. 그 외에도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34권, 성종 12년 10월 17일 무오 1번째기사에는 東夷則扶桑日本라고 하여 '[[동이]]족이 부상(扶桑) 및 일본'이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동이=부상+일본'설을 제기하는데 [[동이]]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역사상 동이(東夷)가 가르키는 대상은 누가 언제 부르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그 외에도 '일본' 국호가 본래는 [[한반도]] 국가들 간에서 구 왜국을 이르는 이칭이었는데, 이것이 [[701년]] [[다이호 율령]] 제정 시에 반영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주로 근대 개화기 일본의 지리학계 일부에서 나온 주장으로, 대표적으로 [[와세다대학]] 교수이자 일본의 대표적 사학자, 지리학자인 요시다 토오고(吉田東伍, 1864~1918)가 [[1907년]]에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辞書」)를 펴내며 이와 같은 견해를 나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