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 (문단 편집) === [[민간인]] 수탈 === [[태평양 전쟁]] 후기 일본 [[민간인]]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는데, 당시 일본 민간인들의 1인당 하루 식량 배급량은 규정상 매일 1인당 약 20g의 쌀, 100g의 [[과일]]과 [[야채]], 50g의 [[밀가루]], [[설탕]], [[조미료]], [[해조류]] 등이 포함된 300g 정도였는데, 보통 사람은 최소 하루에 600g 정도의 식자재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양조차도 모자란 배급 식량에는 나와야 할 쌀이 나오기는커녕 콩이나 [[고구마]]조차도 없었고, 전쟁 이전에는 [[돼지]]들 사료로나 주던 콩껍질이나 고구마 줄기 같은 게 잔뜩 섞여 있었다. 여기에 4인 가족 기준으로 단백질을 공급해 줄 [[정어리]]가 2마리 배급[* 정어리는 그리 큰 [[생선]]이 아니다. 정어리 2마리 정도면 현재 대형마트 등지에서 파는 통조림 1캔 정도의 분량인데 이게 80g 정도이다. 80g의 생선으로 하루 4인 가족의 단백질을 보충하라는 것이다.]되었고, 규정상 15세 이하 [[어린이]]와 60세 이상 [[노인]]에 한해 1달에 딱 1번 [[과자]]가 배급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어린 시절 [[태평양 전쟁]]을 체험한 노인들의 증언으로는 [[그런 거 없다|그런 건 없었다]]고 한다. 물자가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군인과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 민간인들에게 가야할 물자를 횡령한 탓이 크다. 양도 질도 엉망인 무언가를 배급 식량이랍시고 받은 당시 일본인들은 소위 '천장죽'이라 부르는 [[죽]]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죽이 어찌나 맹물처럼 맑은지 천장이 다 비쳐보인다"는 씁쓸한 농담에서 '천장죽'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그나마 일본 민간인들은 배급식량이라도 받았지만 식민지였던 한반도는 사람들이 흙까지 파먹을 정도로 물자수탈이 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