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무기체계 (문단 편집) ====== 사용 불가 ====== 어떻게든 자원을 사용처에 운반했다면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유용하게 써야 하는데, 일본군은 그것도 잘하지 못했다. 일본군 해군에는 훌륭한 공작함 [[아카시 공작함|아카시]]가 있었다. 이 배는 '''연합함대의 '평시' 연간공수의 40%를 단함으로 시행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많은 활약을 했다. 무장은 매우 빈약하지만, 공작함에 중요한 건 수리 능력이지 화력이 아니니까 매우 쓸만 했다. 그런데 이 배는 '''한 척이다.''' 일본 연합함대의 규모로 보아 [[공작함]] 6척은 있어야 하는데 한 척이다. 이것도 평시 기준이고, 전시에는 이런 공작함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공작함이 아카시 한 척이다. 이래서는 그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고, 아카시가 격침되면 일본 해군은 붕괴된다. 대양해군에서 공작함이나 수송함 같은 지원함 세력은 대단히 중요한 존재인데, 지원 세력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점은 일본 해군의 큰 실수였다. 일본 해군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함대결전사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함대결전에서는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승패가 몽땅 갈리기 때문이다. 즉, [[오늘만 사는 사람|한 번 크게 싸우고 그 이후가 없는 것]]. 그러나 이게 단견이라는 사실은 아래에 있는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문단을 보면 나온다. 그리고 아카시가 연합함대를 담당한 연간 공수비율이 40%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도 걸러 들어야 한다. 왜냐? '''전시가 아닌 평시'''다. 즉 전시에는 아카시 한 척으로 공수 요구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나온다. 더욱 고약한 게, 아카시에 적재된 독일제 공작기계들은 당시의 일본 내에서도 비슷한 규모를 가진 공장을 찾을 수 없었다. 쉽게 표현하면 [[올인|수리용 공작기계들 80% 이상을 아카시라는 단 한 척의 배에 몰아넣은 것]]. 일본군에 뇌가 있었다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로부터 어떻게든 공작기계를 더 사와서 아카시 같은 전문 공작함을 몇 척 더 만들었어야 했다. 일본군도 이건 아니라고 봤는지, [[시키시마급 전함]] 2번함 [[아사히#s-5.1]]를 공작함으로 개장했다. 원래는 전함이던 배를 연안 방어함으로, 이걸 잠수함에 대한 관리, 보급을 하는 잠수 모함으로 개장했다가 마지막에 공작함이 된 것이지만 중요한 건 공작함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제 공작기계 부족으로 아카시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데다가 아사히는 1942년 5월에 미군 잠수함의 뇌격을 맞고 침몰했다. 모처럼 개장했는데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셈이다. 급해진 일본군은 어떻게든 손을 썼지만 아카시를 제외하면 특설공작함 야마히코마루(山彦丸), 야마우라마루(山浦丸), 백사(白沙)밖에 없었고 이들도 미군에게 격침되는 판이었다. [[답이 없다]]. 그래도 연습 항공모함 [[호쇼(항공모함)|호쇼]]와 중뇌장순양함 [[키타카미]]를 공작함으로 개장해서 써먹으려고도 했으나, 이미 전쟁은 끝난 후였다. 결국 호쇼는 일본군 병사들을 귀국시키는 복원 수송함 역할을 했고, 키타카미는 가고시마로 옮겨진 후 복원 수송함들을 수리하는 보급 정비함 노릇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둘 다 사이좋게 해체. 트럭이나 공작함 같은 군수지원도 엄연히 무기인데 전투장비에만 집중한 나머지 보급에 대해서는 소홀해졌고 이는 일본군에게 매우 큰 문제가 되었다. '''"초보자는 [[전술]]을 연구하지만, 숙련자는 [[보급]]을 연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반대로 연합군은 보급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았다. 미군이 아카시를 중요 목표물로 지정하고 집중 공격한 게 우연이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