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무기체계 (문단 편집) ======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 >輜重輸卒が兵隊ならば蝶々トンボも鳥のうち 焼いた魚が泳ぎだし 絵に描くダルマにゃ手足出て 電信柱に花が咲く >치중수졸[* 군수품의 보급과 수송에 종사한 병사를 일컫는 용어이다. 다만 현대의 보급병과는 취급이 다른데, 부대의 전력으로도 취급하지 않은 수준이라 총검 이외의 무기를 따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들이 개인적으로 무장을 한 경우도 있긴 했다.]이 군인이라면 나비와 잠자리도 새일 것이고, 구운 물고기가 수영을 하고 그림 속의 달마에 손발이 돋고 전봇대에 꽃이 필 것이다. 위는 러일 전쟁 당시에 유행한 일본군의 노래인데, 일본군이 보급담당 노무자 부대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다. 이는 일본이 역사적으로 경험한 전쟁의 절대다수가 기본적으로 내전이나 다름없는 일본열도 내부의 영지전이었던 탓에, 대충 등짐 짊어지고 가서, 상인한테 사거나 현지에서 조달하던 것에서 기원한다. 문제는 이러한 내전식의 보급 독트린이 바다 너머에서 싸우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시기까지도 현역이었던 것. 당장 청일전쟁기만 해도 한반도에 군대를 밀어넣으며 보급을 안 해줬다. 물론 그 군인들이 "보급이 안 오니 굶자!"라고 할 리는 없었고, 당연히 조선이 빡쎄게 털리고 쥐어짜였다. 어느정도냐면, 전후 배상금 처리때 일본 내각에서 '우리가 조선에서 털어먹은 게 얼만데 좀 챙겨줘야 하는거 아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는 소수의 의견에 그쳤고, 배상금 같은건 안 줬다. 일본군 보급의 가장 큰 문제점이 이것이다. 처음부터 일본군은 보급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충분히''' 보급을 해줘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도 갖추지 못했다. ~~그놈의 신주불멸로 노래를 부를 지경으로 제대로 전쟁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심각한지 [[일본군/문제점]] 항목에는 '전투원과 정신력만을 강조'라는 문단이 따로 있다. 그 이전에, [[일본군]] 항목에 보급 문단이 당당히 포함되어 있다. 치중수졸이 군인이라면...이라는 저 노래 자체가 일본군 항목에 올라와 있는 걸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본군의 보급 문단에는 식량 문제만 주로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군수품에 대한 개념도 매우 빈약했다. 전투원만 우대하는 군 문화, [[아무로 레이]]가 정신력으로 [[액시즈]]를 들어올리는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만화]] 같은 수준의 정신력 만능 주의, "군인의 정신력보다 물자가 더 중요하다"는 상식적인 발언을 하면 반역으로 간주되는 군대가 제대로 보급을 할 리가 없다. ~~끔찍한 건 국군마저도 비슷한 개소리를 하던 게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이란 거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해군에서 최고 수훈함으로 여겨지는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이다. 이 배는 전쟁 초반에 많은 활약을 한 나구모 함대의 기함이지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연이은 전투로 함재기 숫자가 줄어드는데도 전력 보충을 제때 해주지 않았고, 낡아가는 키를 바꿔달라는 요구도 무시당했다. 89식 대공포보다 더 안좋은 부실한 대공포도 제대로 보강해주지 않았다. 결국 아카기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전투기 부족으로 적의 급강하폭격기 공습을 막지 못했고, 위력적이지 못한 대공포 탓에 적기를 하나도 격추하지 못했으며, 문제의 키가 지근탄 한 방에 박살난데다, 명중탄이 하필이면 함의 급소에 맞는 불운까지 겹치면서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군은 대공포쯤은 나중에 바꿔도 될 것이고, 함재기쯤은 나중에 채워도 될 것이며,~~아니 캐리어가 인터셉터를 꽉 안 채우면 도대체 어디에 씁니까~~ 키는 나중에 바꿔도 될 거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다가 큰 화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본군에 제대로 된 대공포가 없다는 문제는 당장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함재기와 키는 어떻게든 손을 썼어야 했다. 미드웨이의 패배가 꼭 이 탓만은 아니지만, 보급을 이런 식으로 해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멀고 먼 남태평양도 아니고, 일본 본토에 들렀는데도 함재기와 키도 보급해주지 않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물자가 부족한 전쟁 말기였다면 보급이 원활하지 못 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지만, 전쟁 초기에 일본이 잘 나갈 때도 저랬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쇼카쿠와 즈이카쿠, 준요 같은 항공모함에 함재기를 제대로 보급해주지 못한 걸 보면 반성은 없었던 모양이다. [[과달카날 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가 일본군을 짓밟고 있을 때, 준요는 근처에 있으면서도 싸우지 못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소모한 함재기를 보충받아야 하는데, 함재기 보급이 안 오니 싸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1943년에는 [[쇼카쿠급 항공모함|쇼카쿠]]를 비롯한 항모부대에 지급된 함재기와 조종사들을 도로 빼앗아서 지상기지에 배치했다. 당장 사용할 전력이 필요하다는 핑계는 있었지만, 함재기 조종사를 육성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감안하면 미친 짓이었다. 함재기 없는 항공모함이 어떻게 싸우란 말인가? 결국 지상기지에 배치된 함재기와 조종사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고, 쇼카쿠와 즈이카쿠, 준요는 이착함도 제대로 못하는 풋내기 조종사들을 태운 채 고전하다가 [[필리핀 해 해전|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당했다. 과달카날 전역이 끝난 후에야 함재기와 조종사 보급을 받았는데 그걸 다시 빼앗아가는,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관광보낸 짓이었다. 거기에 더해 일본군 해군은 어째서인지 항공모함과 항공대를 하나로 간주하는 이상한 사상도 가지고 있었다. 즉, 항모A가 수리중이면 A항공대를 항모B에 잠깐 보내는 식의 유연한 전력 운용을 거부하고 있었다. 일본의 자랑인 [[야마토급 전함]]은 예비 부품이 아예 없었다. 18.1인치 포의 예비 포신은 8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야마토급 전함은 1척당 9개의 포신이 들어가고, 여기에 자매함 무사시까지 포함하면 아무리 못 해도 18문 이상의 예비 포신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한 척 분량의 예비 포신조차 없는 이런 상황이라면 전투는 기대할 수도 없고, 실전적인 훈련도 불가능했다. 전함의 포신은 엄청난 압력과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는 부품이기에 수명이 길지 않고,[* 전함의 주포 포신은 보통 적으면 백수십발, 많아도 300발 이내에 포신의 수명이 다한다.] 포신 수명이 다 되면 포를 쏴도 맞지를 않게 되기 때문에 그 큰 전함이 무용지물이 되는데, 예비 부품조차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훈련을 하겠는가. [[함대결전]]에 한 번만 제대로 쓰면 되는 무기였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그런 중요한 결전에 투입하려는 목적이라면 야마토의 승조원들은 국운을 짊어진 전투를 믿고 맡길 수 있을 만큼 숙련된 베테랑들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상식이고, 그러려면 포를 많이 쏴 보면서 함포의 특성과 운용법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아무기 병기 자체의 성능이 우수하다 해도 제대로 훈련도 안 하고 실전에 투입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1번함 야마토가 제대로 포격을 못 해서 미군 구축함 USS 히어만에게 패배하고 도망가고, 2번함 무사시가 자기 주포로 자기 대공포좌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대공사격도 제대로 못하고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된 건 필연이었다. 군함을 제대로 운용하려면 예비 부품을 준비해야 한다는 개념을 머리에 탑재하지 않은 탓이었다. 일본 육군은 [[무타구치 렌야]]의 명언으로 대신하겠다.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니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보급이 가능한데도 보급품을 안 주고, 이미 준 보급품을 다시 빼앗으며, 보급품을 충분히 생산하지 않아서 낭패를 보고, 보급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인간이 사령관이 되는 게 일본군의 실상이다. 보급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 따위인데 이길 리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