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무기체계/원인 (문단 편집) == [[갈라파고스화|호환성의 부재]] == 일본의 당시 산업능력을 살펴보면 광학, 조선 등은 그나마 잘 나간 축이었고 항공 분야는 의외로 2차대전 참전국 중 대체로 중간은 했다. 그 외에 저기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중화학 공업 분야 상당수는 발전이 더뎠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차량 분야는 1930년대에 와서 겨우 다른 나라에 수출할 정도인 물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철강 기술력도 꽤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일본은 1930년대에 와서 중공업 위주 산업구조로 전환하게 되었는데 그 수출 지역은 주로 중국, 만주 등 같은 동아시아권이었다. 결국 자국의 중공업 기술력이 떨어지는 관계로 꽤 다양한 장비들을 외국에서 사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얘들 역시 보급이 혼선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중일전쟁으로 국부군 노획장비를 이용하면서 쓸데없이 병기 사용 폭이 다양해지고 태평양전쟁으로 미제도 써보게 되면서 호환성은 바닥이 되었다. 문제는 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9일의 [[도쿄 대공습]]까지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의 효과가 미약해서 그 때까지 산업시설과 인력을 제대로 보전하면서 싸울 수 있었다는 엄청난 이점에서도 불구하고 수입하거나 노획한 기술력을 제대로 일본의 기술력 안으로 편입시키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산업능력만 유지함으로서 파국이 닥쳤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를 일본이 제대로 된 규격 하나 없었다던가 숙련공을 징병해서 품질이 개판이 되었다는 식의 단편적인 이유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더 심각했다. * 1. 이미 산업화와 더불어 규격화 이야기는 20세기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고 따라서 국제적으로나 선진 구미 국가들 상당수는 다들 나름대로의 규격 제도 정도는 갖춰놓고는 있었다.[[http://m.blog.naver.com/kiup114/140160466258|예시]] 이미 일본에서는 1919년에 일본표준규격(JES)를 제정한 바 있었다.[[https://books.google.co.kr/books?id=KMXRAAAAMAAJ&q=%E7%86%9F%E7%B7%B4%E5%B7%A5+%E5%BE%B4%E5%85%B5&dq=%E7%86%9F%E7%B7%B4%E5%B7%A5+%E5%BE%B4%E5%85%B5&hl=ko&sa=X&ved=0ahUKEwj28K7v5v3QAhUHjLwKHaF-C8IQ6AEIGDAA|예시]][[https://books.google.co.kr/books?id=di68AAAAIAAJ&q=%E7%86%9F%E7%B7%B4%E5%B7%A5+%E5%BE%B4%E5%85%B5&dq=%E7%86%9F%E7%B7%B4%E5%B7%A5+%E5%BE%B4%E5%85%B5&hl=ko&sa=X&ved=0ahUKEwj28K7v5v3QAhUHjLwKHaF-C8IQ6AEIUDAJ|예시]] * 2. 숙련공 문제의 경우 사실 평소에는 일본도 숙련공 정도는 징병에서 유예를 하는 규정을 둔 바 있다. 오히려 품질 저하 문제는 첫째로, 원료가 저질이 된 것, 대량생산체제로 접어듬에 따라 공원들 중 미숙련공들의 비중이 훨씬 증가함에 따라 품질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폐해가 커진 점 등에 기인한 점이 훨씬 크다. 또한 일본도 이런 쪽에서 경험자들은 주로 공병 분야에 배치했다. * 3. 사실 대전 말에는 진짜로 숙련공, 고학력자도 병력이 부족해서 마구잡이로 징집했는데, 일본은 행정이 그리 철저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병력을 모으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빠져나가려면 구멍은 충분했고, 그러므로 숙련공을 마구잡이로 징집했다던가 아니면 그 폐해가 크다던가라는 말은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 문제는 차라리 위에 언급한 제대로 된 규격이 없다거나 숙련공을 마구 징집했다던지 하는 소문이 사실인게 일본 제국에게는 더 나았다는 것이다. 소문대로라면 일본 산업계는 정상적이므로 규격이 없으면 규격을 만들면 되고 숙련공을 징집하지 않거나 산업현장으로 되돌려주면 바로 정상화되었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래봤자 소용이 없는 __일본 산업계의 구조적인 문제__이므로 더 사태가 심각하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패전 6개월 전에나 본격적으로 공습의 효과를 제대로 당하게 되므로''' 그 전까지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할 일본 산업계가 전시 생산 좀 했다고 이상한 소문이 돌 지경이라는 소리는 애초부터 주먹구구식으로 대강 만들어서 최종 처리시에 숙련공이 감으로 대강 움직이게 최종 마무리만 직접 하고 물건을 납품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이래서는 규격이 있건 없건 의미가 없어지며 공장에 숙련자들이 모두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숙련자가 늘었다고 갑자기 생산품 품질이 하락하는 사태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례로 나카지마의 경우 대략 8배 이상 공원 수가 증가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미숙련공들 중에는 부상을 당했다든가 하는 이유로 여튼 전투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http://web.donga.ac.kr/hssong/qchisto1.html|예시]], [[http://m.cafe.daum.net/yasungmi/LljJ/1144|예시]].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일은 2차대전 주요 참전국에서 모조리 벌어진 일인데 일본만 이런 상황이 생긴게 특이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2차대전 이전의 품질관리는 미국이건 어디건 검사자가 대량생산되는 작품 중 일부를 골라 표본으로 삼아 체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나마도 그 영미권도 걸음마 단계에 있거나 아니면 품질 관리에 대한 인식이 그리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고 하고 그 사례로 [[어뢰 스캔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번지수가 틀린 이야기다. 어뢰 스캔들의 경우에는 품질관리가 문제가 아니라 설계문제이며 전간기에 개판같은 어뢰를 만든 기술개발부서와 관계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 안하고 똥고집을 부려서 일이 커진 것이며 진짜로 품질관리가 문제였다면 개선된 어뢰도 모조리 일본 수준으로 불량품 투성이라서 미국 잠수함이고 미국 뇌격기고 간에 어뢰를 사용하지 않아야 정상인 것이며 공적도 종전까지 못세워야 정상인데 실제는 전혀 달랐다. 애초에 미국이 그렇게 품질관리가 안되는 국가였으면 [[M4 셔먼]]이나 [[M1911]]이 다른 회사가 생산한 부품도 호환되는 게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일본은 [[치하]]의 경우만 봐도 전쟁 말기로 가면 미쓰비시와 히다치의 부품이 같은 치하인데도 불구하고 호환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였다. [[Ki-84 하야테]]는 한술 더 떠서 생산한 기체마다 날개 길이가 서로 미묘하게 다를 정도로 조악해서 현지 부대의 정비병들이 이런 조악한 하야테 여러 대를 분해해서 그나마 좋은 부속을 골라서 그나마 멀쩡한 1대의 하야테를 만들거나 다른 기체를 정비하는 계 일과였을 실정이었다. 사실 이러한 기술적 문제는 일본 자체가 타 공업국보다 산업화가 늦었음은 물론이고 상술했듯 중공업 분야의 발전이 상당히 느렸던 탓에 충분한 숫자의 숙련공과 기술자를 양성할 인프라의 형성이 늦었을 뿐더러 그 규모도 부족했기에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여성 등의 비숙련 인원을 공장 등에 투입한건 다른 국가들도 비슷했으나 미국의 경우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경험에서도 볼 수 있듯 고장난 자동차를 젊은 여성이 수리해낼 정도의 기본적인 정비능력을 가질 정도로 차량 등의 기계 보급률이 높고 기술 교육에 대한 인프라가 잘 짜여져 있던만큼 공장에 투입되더라도 숙련공 정도는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1인분은 해내는데 반해 일본의 경우 비숙련공이란 그야말로 살면서 렌치나 스패너 한번 잡을 일 없었던 인원들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공교육 과정에서 굳이 [[실과]]나 [[기술가정]] 과목을 집어넣는 것도 이런 이유다. 모든 국민을 기술인력으로 육성하겠다는 게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술 부문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게 더 큰 문제가 된 이유는 숙련공이 비숙련공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서 최소한 중간급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없다시피 하고 도입할 여건도 안된다는 것에 있다. 타국도 무자격자가 비숙련공으로 들어오는 사례는 다수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든 훈련시켜서 중간이라도 가게 만드는 데 일본은 수입한 기계가 낡아가면서 기존 라인에서 나오는 생산품이 숙련공이 수정하기에도 벅찰 수준으로 문제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비숙련공을 가르칠 시간도 없고 가르쳐봤자 거기서 거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숙련공도 약간은 엉뚱한 곳으로 징집당하긴 했다. 따라서 호환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소문처럼 단순한 몇가지 요인이 아니라 당시 일본 산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