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무기체계/해군 (문단 편집) == [[어뢰정]]과 [[해방함]] == 해군에서 구축함보다 작은 함정들도 여러가지 업무를 담당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구축함보다 작기 때문에 적 함대와 싸우는 업무는 거의 담당하지 않으며 지역 경비, 대잠, 소해, 연락등 다양한 보조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력함대를 돕고 해군의 전체 업무가 잘 돌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일본 해군의 경우에는 [[어뢰정]]도 함대결전사상과 점감요격작전에 맞추어서 특화했으며 이에 따라 배수량이 수백톤 이상인 수뢰정과 그 미만인 어뢰정으로 세부항목이 분리되었고 개함우월주의에 따라 배수량에 걸맞지 않게 무장을 증대시키다가 무게중심이 상승해서 [[토모즈루 사건]]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타국 해군의 소형함들이 담당하는 주요 업무는 [[해방함]]이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해방함은 1898년에 해안선 방어 목적으로 구형 군함들을 모아서 이름만 변경한 것인데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구축함에도 보유할 수 있는 배수량 쿼터가 정해지면서 구식 구축함들도 함대결전 전력으로 복귀하는 바람에 빈자리를 채울 소형함을 만들어서 해안선 방어 외에도 대잠, 소해등의 잡다한 업무를 담당할 군함을 만들자고 했고 그 이름으로 해방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 때까지 노후함이나 퇴역함을 해안경비로 써먹던 기존의 해방함은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까지도 존재했다. 그러니까 시무슈형이 건조된 이후 기존의 해방함이 모두 제적될 때까지 해방함이 두 종류 존재했던 셈이다. 이런 기존의 해방함들은 1942년 7월 20일 분류가 해방함에서 연습특무함 등으로 바뀌면서 해방함은 해방함이 해안경비와 선단호위를 목적으로 설계된 전용함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1937년 시무슈(占守)형 4척의 건조가 결정되고, 여기에 더해서 일본은 태평양전쟁 개전 이전부터 남방자원지대와 본토를 잇는 해역의 확보와 수송선단의 호위를 위해 전용함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미 해안경비에 쓰이고 있던 시무슈형을 선단호위에 맞게 개량하여 이를 충당하기로 한다. 새로 건조되는 호위함은 1941년 전시응급조함계획에서 30척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에서 어뢰정과 해방함은 모두 전황에 걸맞지 않은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어뢰정의 경우에는 전장이 광활한 태평양 한복판으로 나아가면서 원양항해 능력이 미약하고 항속거리가 짧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해버렸다. [[과달카날 전역]]같이 섬과 섬 사이에서 활약할 수 있는 전장도 있었으나 대공능력이 빈약하여 항공기 공격에 취약한 관계로 [[대발동정]] 호위같은 제한적인 임무만 수행가능하였다. 차라리 이쯤가면 후술하겠지만 해방함이 모자라니 어뢰정을 고속성능을 갖춘 해방함으로 용도전환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지만 끝까지 어뢰정으로 사용하다가 허무하게 공습으로 상실하는 길을 걷고 만다. 해방함의 경우에는 애초 생성 목적부터 일본 해군 기준에서 잡다한 일을 담당하라고 만든 함선이기 때문에 담당한 업무에 걸맞는 성능을 가지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서 부차적인 임무라고 여겨지는 바람에 전쟁 초반까지 생산량도 적었으며 나중에서야 마구 찍어내게 되지만 전황악화로 인한 물자부족등의 원인으로 성능들이 더 안좋아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미국의 잠수함을 잡기에는 숫자도 얼마 안되며 속도도 느리고 대잠용 무기와 [[음파탐지기]]도 빈약하다는 엄청난 약점을 보이면서 오히려 미국의 잠수함에게 잡혀버리는 등 희생이 엄청났다. 일단 전쟁 전에 건조한 해방함의 숫자가 크게 부족하고 나중에서야 마구 찍어내기 시작하지만 탑재할 디젤엔진 동력기관이 잠수함도 많이 사용하는 관계로 크게 부족해서 구식 증기터빈 등의 대체품을 조달하는 등 때를 못맞춰서 1942년에 해상호위총사령부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호송선단 1개마다 해방함 2 ~ 3척이면 많은 셈이고 심하면 1척만 호위해서 잠수함에게 중과부적으로 자주 털렸다. 심지어 호위선단에 [[다이요(항공모함)]]같은 경항공모함에 대잠초계용 [[B5N]]을 탑재한 상태로 넣어서 일본 기준에서는 강력한 호위선단을 구성한 상태에서도 해방함이 미국 잠수함을 못막아서 경항공모함이 미국 잠수함의 뇌격을 받고 침몰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어느 정도 숫자를 확보했더라도 최고속력 17노트 안팎에 불과한 느린 속도부터 매우 큰 문제로 작용했다. 이는 미국 해군 주력잠수함인 [[가토급 잠수함]]이나 [[발라오급 잠수함]]의 수상최대속력보다 느린 것인데 이렇다보니 미 잠수함이 히트 앤 런을 걸어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선단을 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여기에 93식 수중탐신의 같은 폐급 음파탐지기만 주력으로 보유했고 3식 수중탐신의 같은 개선된 물건도 별로 성능이 안좋았으며 1944년에나 탐색능력 강화를 위해 레이더를 장비했는데 1호 3형(13형)과 2호 2형(22형)의 두 종류가 있었으며 대공용의 13호 전탐은 후부 마스트에, 대수상 탐색용의 22호 전탐은 전방부 마스트에 장착했다. 하지만 일본군의 수준낮은 레이더 덕분에 잠수함이 수면 위로 부상하던 수중에서 잠수하건 간에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서 선제공격을 쉽게 당했다. 대잠용 병기도 [[폭뢰]]만이 주력이어서 빈약했고 나중에서야 함수에 8cm 박격포(97식 곡사보병포/3식 81미리 박격포)를 장비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그나마 일본 해군 구축함보다 폭뢰의 탑재량이 많고 한번에 폭뢰를 뿌릴 수 있는 투사량도 많으며 폭뢰발사기도 장비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잠장비만 보유하기에도 배수량이 모자라서 다른 무장이 빈약하여 공습에 쉽게 당한다는 점도 문제였다. 보통 5인치급 고각포 2문 정도에 [[96식 25mm 고각기총]] 10문에서 20문 사이의 무장으로는 적의 공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여기에 다용도성을 살린다고 소해장비까지 갖추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어쩡쩡한 배가 된 것도 상당한 문제점으로 작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