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문제점 (문단 편집) === [[자멸|결과: 스스로 무너지다]] === 결국 일본군이 전선을 너무 대책없이 늘린 대가는 태평양 전쟁 후반에 제대로 치르게 된다. 일본군은 같은 추축국인 [[독일]]과 제대로 협력하기는 커녕 자기네 육해군 대립도 컨트롤 못했고, 그 결과는 [[일본의 전쟁범죄|수많은 학살과 착취 행위]] 같은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군은 강력한 [[문민통제]]를 바탕으로 자국군 컨트롤에는 별 지장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영국]], [[소련]], [[중국]], [[프랑스]], [[폴란드]] 등과도 잘 연계했다. 비록 [[서부전선]]에서는 전차 운용 [[선진국]]인 영국군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고 소련에게는 [[호구(유행어)|호구]]처럼 굴었으며, [[중국]]을 너무 몰랐지만 그래도 일본에 비하면 팀웍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전략]]을 보더라도 미국은 통상파괴나 잠수함 운용 분야에서 일본과는 비교를 불허했으며, 항모 운용은 완전히 역전했다. 육군이야 [[반자이 돌격]]이나 정신주의 일색의 1차 대전형 군대였던 일본군과 1차 대전 중에도 그렇고, [[유럽]]에서 몸소 최신식 기술을 연마한 미군의 기량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딱 하나 우세한 것이 있다면 일본군이 방어를 하는 입장이라 개별 지점을 그럭저럭 잘 요새화해서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좀 잘 한 축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중반의 [[타라와 전투]]나 막바지의 [[이오지마 전투]], [[오키나와 전투]]다. 심지어 일본은 [[공군]]이 가장 전성기였던 시점에도 [[둘리틀 특공대|둘리틀 공습]]을 당했고, 당시 [[영미권]]은 폭격기 운용에 관해서 최강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군은 [[중국군]]에겐 계속 이겨왔지만 [[미군]]이 점차 전투력을 회복하고 보강하여 달려들자 전사자 교환 비율은 심하면 1:10, 1:20, 후반기 맥아더의 필리핀 탈환전에서는 1:26에 육박했다. 그러나 이오지마 전투와 비슷하게 전상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해당 비율은 훨씬 줄어든다. 출처에 따르면 사상자는 미군 쪽도 루손 섬에서만 10만은 넘어간다. [[루손 섬]]에만 한정하면 일본은 23만 가량이라고 하고 말이다.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september-2007/lessons-from-iwo-jima|예시]], [[http://www.history.army.mil/brochures/luzon/72-28.htm|예시]] 미군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전사자+부상자 교환비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1:1.5 ~ 1:2 남짓하여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보급이고 뭐고 없고 화력도 크게 뒤쳐지는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미군 상대로 입힌 사상자 숫자를 보면 일본군이 결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미군도 악을 쓰는 일본군의 제압에 적지 않은 출혈을 입어야 했다. 그런데 사상자가 아닌 순수 사망자 교환비만 계산해보면 툭하면 미군 상대로 1:5 ~ 1:20 같은 그야말로 막장스러운 교환비가 나온다. 이런 이상하게 극단적인 사망자 교환비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열악한 의료지원체계: 비위생적인 환경에선 긁힌 상처 하나로도 제대로 된 소독 조치가 없으면 2차 감염으로 곪으면서 사망할 수 있다. [[질병]] 및 2차 감염의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 고온다습한 [[태평양]]의 [[정글]]에서 이는 치명적이었다. 타국 군대라면 [[의병제대]]를 하건 복귀를 하건 [[생존]]했을 수준의 부상으로도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음으로서 퍼지는 [[전염병]]이 돌면 수많은 병사들이 싸우지도 못하고 병으로 숨졌다. [[호주군]]과 주로 싸웠던 뉴기니 전선에서는 전투로 인해 죽은 숫자보다 질병으로 죽은 숫자가 몇 배나 많을 지경이었다. 반대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제대로 된 의료지원체계 덕분에 일본군이었으면 이미 저승 갔을 수준의 부상, 열대병에도 치료받고 회복되어 다시 전선에 복귀시킬 수 있었다. * 열악한 보급: 태평양에서 [[과달카날 전역|과달카날 전투]] 이래 여러 차례의 [[해전]]을 거치며 제해권을 점차 상실하며 군수품은 고사하고 [[군량미]]조차 장시간 보급되지 못했다. 일본군에선 잠수함까지 동원해 어찌 보급해보겠다고 발버둥쳤지만, 그런 작은 걸로 제대로 보급이 될 리 만무하다. 당연히 수많은 장병들은 미군 구경도 못해보고 [[아사#s-1|아사]]했으며, 영양섭취의 열악함은 당연히 [[신체]]의 면역력을 크게 악화시켜 안 그래도 질병에 취약한 [[정글]]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병 걸려 뻗어버리는데 더욱 일조했다. 이 때문에 [[식인]]도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 [[항복]]을 용납하지 않고 [[반자이 돌격|자살 돌격]]을 강요하는 광신적인 마인드: 휴식중이거나 치료받아야 할 경상자들도 모조리 끌려나가 [[총알받이]]가 되었을 것이며, 정상적인 군대라면 적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고 항복을 해야 할 상황에서도 끝까지 발악하면서 안 죽을 사람들도 모조리 죽게 만들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2만명의 병력 중 포로로 잡힌 사람은 1%인 216명밖에 안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일본군은 그야말로 기괴할 정도로 부상자가 적고 극단적으로 높은 사망자 비율을 자랑했다. 보통 전사자가 부상자보다 적어야 정상이다. 가령 2차대전 내내 손실 통계를 보면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사자는 부상자 수 대비 약 20% ~ 50% 정도이며, 지독한 동원에 소련에 의한 보복학살까지 당한 [[나치 독일]]도 사망자 500만 명에 부상자 700만 명으로 전사자/부상자 비율이 70% 정도로 그나마 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은 전사자 210~230만 명, 부상자 33만 명으로 전사자가 부상자에 비해 700%가 넘는 이상하고 기형적인 비율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미군 상대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보여준 전투력과 미군에게 강요한 전투손실 자체는 상당했지만, 국가적 전쟁 수행의 측면에서 볼 땐 그야말로 뻘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전선에 복귀시킬 수 있는 병력들까지 모조리 날려버린 꼴이다. 전투로 인한 교환비가 1:1.5 ~ 2 정도로 미군 상대로 선전했다고 자위해봐야 결국 복구 불가능한 영구적인 인력손실은 미군보다 몇 배에서 심하면 십수배나 많이 입은 것이다. 숙련된 베테랑 장병이 쌓일 수가 없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전쟁 말기 [[베테랑]]의 전멸이라고 하면 흔히 일본 육군/[[해군 항공대]]의 [[파일럿]]들을 연상하지만, 이는 다른 병종에서도 마찬가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