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문제점 (문단 편집) == [[장교]]들의 역량 부족 == 대부분 국가들의 장교가 소대장부터 시작하여 소부대 지휘 기술을 습득하는데 반해 일본은 평시에 [[분대]] - [[소대]]가 없다. 그러니 [[분대장]]도 없고 [[소대장]]도 없다. [[내무반]] - [[중대]]로 바로 이어지는 구조가 있을뿐. 일본군은 신병훈련소가 따로 없고, 자대에서 기초 교육과 주특기 훈련을 모두 받는다. 게다가 그 기간이 무려 6개월에 달한다. 그럼으로 평시의 일본군 부대는 그 자체가 하나의 [[훈련소]]이다. 그러니 소대장, 분대장이 없어도 되는 것. 자칭 최강의 [[관동군]]조차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쳐들어 오는 날까지 평시 편제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러운 공세에 전시체제로 전환되어 소대-분대로 재편하기 전에 이미 다 쓸려나가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일본군의 최대 특징이 [[지휘관]]은 근엄하게 앉아서 기안 올라온 작전의 가부만 결정하고, 지휘관이 할 일은 다 [[참모장]]이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교가 할 일은 다 하사관들이 하고, 하사관들은 병졸들을 쥐잡듯이 잡는 구조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병졸들의 훈련은 하사관들이 담당한다. 내무생활의 경우 아예 중대에 '내무계'라는 이름으로 [[준위]]가 한명씩 있어 그가 책임지고 관리한다.[* [[조장]]은 '서무계', [[군조]]는 내무반장이다. 그리고 [[오장]] 또는 오장 대우 [[상병]]이 내무반의 [[실세]]였다.] 그럼 중소위 같은 [[초급 장교]]들은 무얼 하는가? '장교의 3술'이라고 불리는 검술, 기마술, 전술을 연마한다. 여기서 [[전술]]은 소대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책을 보면서 공부하는 것을 '전술' 연마라고 한다. 그리고 주번사관으로서 근무하며 가장 중요한 육군대학교 [[입시]]에 몰두한다. 육사 졸업 후 2년 차부터 지원 가능하며 최대 8년 차까지 육대 입시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렇게 지휘관 경험 없이 중소위 시절을 보낸 후에야 대위로 승진하는 것이다. 육대 합격하여 3년을 갔다 온 사람조차 소대장 지휘 경력도 없는 것은 당연 지사. 그나마 뭔가 해볼 수 있는 [[보직]]은 [[대대장]]이나 [[연대장]]의 [[부관]]이 되는 것 정도. 이러다 보니 일본의 중소위들의 자질은 심각하게 부족하였다. 아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 육사 생도 시절부터 [[승마]] 훈련 시간이 비정상 적으로 높았다. 현대 한국의 육사처럼 [[생도]] 시절에는 교육받고 소위로 임관하여 [[실무]]를 익히는 게 아니라, 일본군은 육사 때도 장교의 3술, 소위가 되어도 장교의 3술만 갈고닦는 것이다. 애초에 검술을 수년간 익혀 [[검성]]이 되었다 치더라도 대체 [[현대전]]에서 그딴 걸 어디다가 쓴단 말인가. 그나마 쓸만한 건 전술 공부였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 크게 잘못되었다. 사실 일본군 초창기에는 육해군 모두 유럽에서 번역해온 최신 군사학에 관심이 많아 장교들은 이를 탐독하였다. 그런데 러일전쟁의 승리에 도취한 이후 유럽 군사학에 대한 연구는 사라지고, 대신 '전범령'이라는 책 한 권만 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전범령 만능주의로 빠져든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실전]]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각종 [[교전]] 또는 교범을 해설한 교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도는 좋은데 일본군들은 '이 전범령만 공부하면 충분하다'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심지어 육대에서도 러일전쟁 이전에는 세계 군사학의 최첨단을 학습하는 게 수험 공부였지만, 러일전쟁 이후에는 전범령을 암기하고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만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일본 군사계의 수준은 급속히 추락하였다. 이러한 풍조는 1차 대전을 지나 2차대전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대위]]가 되어 비로소 [[중대장]]이 되어도 지휘관으로서 자질을 다지기에는 부족했다. 일본군 중대의 주 업무는 신병들을 6개월씩 훈련 시키는 신병 부대장으로서의 업무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업무를 모두 하사관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병력들을 관리하는 내무생활은 준위가 담당한다. 신병 훈련시 일단 장교는 [[교관]], 하사관은 [[조교]], 병은 [[조수]]가 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사관 조교들이 다 한다. 주로 [[상등병]]인 조수에게만 [[훈련]]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육군에서 지휘관의 역할은 준위가 작성한 '품의'를 상급 기관에 올리는 것이 전부이다. 지휘관은 단지 통수에만 충실할 뿐이고, 모든 실무는 준위가 담당하였다. 장성이 되면 입도 뻥긋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참모장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 오히려 이런 지휘관이 근엄하다며 이상적인 지휘관상으로 추앙되는 것이 일본군이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의 평으로는 일본군 장교들은 멍청하나 하사관들은 쓸만하다고 하였는데, 문제는 일본군에서 하사관은 [[직업군인]]이 아니라 짬좀 찬 병졸로서 대우한다는 것이다. [[호봉제]]가 아니어서 아무리 20년을 근무해도 [[월급]]은 소위 보다 적은데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영외 생활을 할 수 없어 지원율이 극히 낮았다. [[군조]], [[조장]]을 달아도 존경받는 게 아니라 사회 나가면 할 게 없어서 남아 있는 놈 취급받았다. 일단 장교들부터 하사관들을 천시하였다. 말보다 주먹으로 하사관을 다스렸다. 그리고 하사관들이 숙련되기도 힘든 게 준위를 달아도 겨우 40세에 [[정년]]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냥 12년을 근무하면 나오는 은사금을 보고 근무할 뿐이었다. 일본 해군 역시 준위에 해당하는 병조장이 장교가 할 일 대신 다 하였다. 여기에 일본 해군은 특유의 명령 체계가 있었는데 아무리 경험이 많든, 심지어 계급이 더 높든 간에 병학교 출신의 정규 [[사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휘관 유고시 정규 사관 그것도 (전투)병과사관에게 지휘권이 승계되고, 그다음이 기관 사관이며, 그다음은 일반 [[고등학교]] 출신이 보통인 예비사관, 마지막이 병조장 5년 근무 후 승진 가능한 특무사관이었다. 즉, 해군에서 수십 년 짬밥을 먹으며 산전 수전 다 겪은 특무대위라도 정규사관학교 출신인 소위에게 복종해야 했다. 특무 사관의 경우 2계급 낮은 대우를 했으니 특무대위가 소위 취급받았다. 그리고 특무사관은 대위까지가 보통이고 [[소좌]]부터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답이 없다. 결국 모순이 너무 심해 특무사관 제도는 폐지해버렸는데 이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사카이 사부로]]. 최고의 비행 실력과 실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병조장에서 더 이상 승진이 안되다가 패망 직전에 제도가 아니라 특혜에 의해 소위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기관병과는 희한하게 개무시하여, 지휘관 유고시 기관병과 중좌가 병과 소위에게 복종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계과, 법무관, 군의관은 어떤 경우에도 지휘권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같은 장교끼리도 차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는 [[1944년]]에야 병과 사관과 기관 사관 사이에 [[차별]]이 해소된다. 뭐 주계사관의 경우 [[대학]] 나온 엘리트들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혜 같은 보직이라 지휘권에 별 관심은 없었다. 예비사관들은 애초에 2년 복무하러 왔는데 고학력이라고 예비사관학교를 나와 장교가 된지라, 얼른 소집 해제되어 집에 갈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고. 이런 병과 사관만 중시하는 풍조는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였는데, 2차대전의 예를 들자면 당시 해군은 230개의 해군 공병대를 편성하여 대부분을 태평양 전장에 배치했는데 그 운영과 관리를 책임질 지휘관을 토목 전문가가 아닌 병과 사관으로 임명해 버렸다. 이건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해군의 규정인 '내령'에서 해군 공병대의 갑을병정 4종류 모두 지휘관은 병과사관을 부대장으로 임명한다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좌하는 역할에 기술병과 사관을 임명한다고 되어 있었다. 뭐 일본군은 미군처럼 불도저와 화물차가 아니라 곡괭이와 삼태기로 일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긴 했만 그래도 지휘관의 병과 문제도 단단히 한몫하였다. 뉴기니 서북부에서 축성(공병) 참모가 비행기로 정찰 후 항공기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귀한 4개 기계화 공병대를 투입했다가 알고 보니 웅덩이라 아무것도 못해보고 자멸한 적도 있었다. 이때도 축성 참모는 공병 출신이 아니라 병과 사관이었다. 또한 일본군은 평시든 전시든 '[[연공서열]]'에 의한 승진만 한다. 아무리 멍청하고 전쟁시 실적이 나빠도 육대만 나오면 [[별]]을 단다. 그것도 육사 [[기수]]대로.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승진의 지름길이었다. 어차피 실무는 소부대 지휘관은 준위가, 대부대 지휘관은 참모장이 다 해준다. 지휘관은 근엄하게 자리 잡고 통수에 전념할 뿐이었다. 그 통수라는 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참모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최종적인 가부만 결정해 주는 것이다. 이는 [[대본영]] 레벨로 올라가도 마찬가지라 덴노 조차도 가만히 앉아 [[통수권]](Yes or Yes 중에서 선택 가능)만 행사하고 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신분]]인 [[수상]]의 경우 퇴역한 육군 대장 출신은 대본영 회의에 참석할 [[권리]]조차 없었고, 현역 대장인 수상만이 작전 심의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본영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도조 히데키]] 수상의 경우 현역 육군 대장이었기 때문에 대본영 회의에 참석할 수는 있었지만 겸직하고 있는 육군 대신으로서의 발언권, 즉 [[작전]]과 무관한 발언만 가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