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문제점 (문단 편집) === [[적]]이 [[바보]]라는 전제하에 만든 [[작전계획]] === 적이 바보라는 전제 하에 [[작전 계획]]을 수립했고, 이런 작전계획으로 인해 패전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 했다. 당시 일본군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덴노의 황군' 이라는 [[정통성]] 때문이다. [[오사카 고스톱 사건|일본군이 경찰과 대립하고]], [[이누카이 쓰요시|수상]]을 [[5.15 사건|암살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도 끝내 집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이 덴노를 절대적인 [[존재]]로 받드는 [[국가신토]]를 [[국교]]로 채택했고, [[군부]]가 '덴노의 뜻을 받드는 황군' 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덴노의 말은 항상 옳은데 군이 주장하는 것은 곧 덴노가 주장하는 것이므로 성경무오설처럼 군의 주장도 항상 옳아야 했기 때문에 후술할 문제점들을 알면서도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점을 인정하고 고친다면 당시 군부가 내세우던 덴노의 신성성과 무오성이 훼손되고, 이는 곧 덴노의 [[권위]]와 엮어 내세우던 자신들의 [[권력]]과 정통성이 훼손된다. 그렇다고 덴노가 나설수도 없었다. 군부는 결코 일본과 덴노를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군부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전후 책임을 전부 덴노에게 떠넘기려고 한 자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 때문에 군부는 항상 '[[폐하]]의 군대', '[[황국신민]]' 과 같이 덴노의 권위를 강조해왔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부 양심적인 사람들에게 '천황 폐하를 무시하는 [[비국민]]'이라고 낙인을 찍어가면서까지 비판을 막아왔던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가 바로 이런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적어놓은 구절이다. 정확히 말하면 저 문구가 있는 손자병법 모공편과 용간편이 적의 정보를 무시하고 덤비면 설령 이기더라도 무조건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적을 경시하면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알 만한 [[상식]]인데도 일본군은 애써 그걸 무시했다. 적은 바보라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세뇌]]했고, 그런 전제 하에 [[작전]]을 세웠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세뇌하는 모습은 [[1943년]] [[3월 1일]] [[삼간사우]]의 멤버이자 육군성 군무국장인 [[사토 겐료]] 소장이 [[의회]]에서 [[중의원]]의 [[질문]]에 '''미군을 상세히 해부했다면서 한 답변'''에서 엿볼 수 있다. 놀랍게도 밑에 있는 답변들은 하나 같이 [[자기소개|일본군 스스로 지고 있는 문제점과 유사하다.]] >'''1. 미 육해군은 정말로 실전훈련이 떨어진다.''' >'''2. 대규모 [[병단]]을 상당히 졸렬하게 운용한다.''' >'''3. [[미 육군]]의 전술은 전근대적인 나폴레옹 전술로 많은 결점이 있다.''' >'''4. [[정치]]와 [[군사]]와의 연계가 불충분하다.''' 그런데 이렇게 육군 군무국장이 [[외국]] 군대에 대해 의회에서 보고하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무의미한 내용들이다. 미군의 실전 훈련이 떨어진다면 어떤 훈련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대규모 병단의 모범적인 운영은 어떤 것이고 미군의 운영 방식은 어떤 식이며 그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 수많은 전근대적 전술 중에 미군이 채택한 것은 어떤 전술이며 일본군이 그것을 어떻게 파훼할 수 있는지, 미군 수뇌부와 워싱턴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개전시 일본군에게 어떤 이점이 되는 지 정도의 설명과 근거도 없는, 정보 분석 내용이라기보다 [[답정너|미군은 바보라는 것을 토 달지 말고 믿으라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게다가 해군이고 육군이고 지나칠 만큼 초기 [[계획]]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적이 예상대로만 움직이는 상황을 상정해 놓는 안일하고 무모한 작전계획이 현장의 보고나 정보로 수정될 기회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군이 못싸운것도 아니다. 계속 연이어 유리한 상황으로 이어지다가 미국이 한타 [[싸움]]을 작정하고 계획할 당시에도 [[미드웨이 해전#s-5.6|이렇게 했다가 정규항공모함 네 척을 그냥 말아먹었다.]] 예컨대 일본 해군의 작전계획에는 야간에 적 함대를 기습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는 적 함대는 야간에 회피나 기만 없이 원래의 진로를 유지하며, 일본 해군은 적의 위치를 파악했지만 적은 일본군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전제로 작성했다. 이는 [[1942년]] [[8월]]까지는 [[사보 섬 해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레이더]] 기술이 워낙 빨리 발전하면서 [[1942년]] [[12월]]에는 [[에스페란스 곶 해전]]에서 나오듯이 이미 터무니없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이런 일본군의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본 함정들은 적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서로 전혀 통신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위치와 적 함대의 위치, 그리고 다른 일본 함정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포위망을 형성한 뒤 정확한 타이밍으로 정확한 지점을 향해 공격하는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를 펴야 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고안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포위망을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디자인]]하는 작업에만 골몰했다. 그야말로 쓸모없는 [[설정놀음]] 그 자체였다. 진짜 문제는 일본군이 미 해군과 [[결전]]을 벌이기 위한 작전의 핵심인 [[점감요격작전]]에 있었다. 이는 미 함대가 접근할 때 [[동남아시아]] 여기저기에 [[매복]]해 있던 [[항공기]]들이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발진해서 미 해군 함정들과 함재기들은 한쪽에서의 [[공격]]에 대응하다가 다른 쪽에서 다시 공격을 당하는 식으로 우왕좌왕하다가 큰 피해를 입게 되고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미국 함대를 함대결전을 통해 결정적으로 격파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일단 준비 과정부터 문제다. 비행기를 매복시키고 써먹으려면 [[활주로]]가 필요한데 비행기야 숨긴다 쳐도 활주로를 어떻게 숨긴단 말인가? 과달카날 전투가 시작된 계기가 과달카날 섬에 건설 중인 활주로를 보고 그 [[기지]]가 완성될 경우 미국 - 호주 간의 보급선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서둘러 공격한 데서 시작했으니, 활주로를 숨기기란 어렵다. 물론 나름 숨겨보겠다고 활주로 한가운데 [[나무]]를 심었다가 뽑고 이동식 위장 가옥을 이동시켜서 촌락처럼 보이게 하는 등 여러가지 꼼수를 고안했지만 그래봤자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작전을 하려면 미군은 일본군의 위치를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군이 미군 함대의 위치를 먼저 파악한 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기지들이 유기적으로 연합해서 작전을 펼쳐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즉 미군은 그 많은 항공기를 가지고도 [[정찰]]조차 안 하고 무작정 진격하고, 일본군은 고질적인 통신 문제나 지휘권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방의 일본군 전체가 정확한 타이밍으로 미군의 위치를 찾아서 공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도상연습에서 점감 요격 격파 연구만 하는 [[장군]]으로 유명한 나카무라 료조 중장이 미군을 맡아 연구한 대로 움직이자마자 '''일본 연합 함대가 일본 근해까지 밀려서 전멸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장교들이 항의하자 그는 구 일본군 2대 [[명언]] 중 하나[* 나머지 하나는 [[만주사변]]의 주역이자 전쟁 초기에 큰 전공을 세웠던 [[이시와라 간지]]가 육군대학 시절 기관총의 가장 현명한 운용요령은 무엇일까? 라는 문제에 "기관총을 항공기에 장비시켜 술주정꾼이 걸으면서 소변을 보듯 전방위 화망을 형성해 적 행군 종대에 퍼붓는다" 라고 구술한 것.]인 [[http://ja.wikipedia.org/wiki/%E4%B8%AD%E6%9D%91%E8%89%AF%E4%B8%89|"'''미군이 우리 뜻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나카무라 중장은 [[2.26 사건]] 이후 파벌싸움에 얽혀서 [[퇴역]]했다. 또한 이러한 사건에도 일본군은 정작 미군 함대를 어떻게 먼저 찾아낼까, 기지들이 어떤 수단으로 통신을 하고 누가 어떻게 작전을 지휘할까도 제대로 고려한 적이 없다. 단지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 것이 좋을지만 예술적으로 다듬었을 뿐이다. 그 결과 결전을 위해 준비한 기지들은 미군이 먼저 발견하고 선제공격을 받아서 변변한 저항조차 못하고 처참하게 각개격파 당했다. 덤으로 적을 찾아내는 수단도 [[탐조등]], [[조명탄]], [[견시]], [[수상기]]같은 광학적인 방식에만 집중하고 수색에 가장 잘 어울리는 [[레이더]]는 무시했다 심지어 일본군은 [[1938년]]부터 레이더의 기초가 되는 [[전파]]에 대한 연구마저 금지시켰다. 그것도 최소 [[1942년]] 초반까지 그랬으니 그 이후에 레이더를 개발해봤자 때가 늦었다. 일본군은 [[양동작전]]처럼 한 부대가 적의 주의를 끄는 동안 다른 부대가 작전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을 선호했으나, 정보수집 능력과 상황대응능력이 따라주지 않았고 적군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았다. 무리한 양동작전은 매우 복잡한데다 스스로의 힘을 분산시키게 되므로 패전의 지름길이 된다. 양동작전이 효과를 보려면 적군이 자신들의 예상대로 움직여주거나 아군이 우월한 정보력과 기민한 대응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하다. 이렇게 양동작전을 운영하는 게 좋은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양동작전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며 손자병법에서도 양동작전으로 강한 적과의 충돌 없이 목표를 점령하는 것은 좋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넓은 [[지역]]에 흩어진 부대들이 지휘권이나 통신 등의 문제로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없다면 부대를 산개시키지 않고 전투력을 집중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일본은 정보 수집 능력은 등한시하면서도 적군이 우리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경우에 대한 대책 마저도 없는 작전이나 세워대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점감 요격 작전도 그렇지만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미군의 [[수색]] 및 탐지를 회피하기 위해 함대를 상호 지원이 불가능할 만큼 광범위하게 분산했다. 그 결과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본대는 [[나구모 주이치]] 기동부대가 얻어터지는 사이 아무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다가 되돌아왔다. 이 사실을 안 아카기의 전투기 비행대장 이타야 시게루가 '전쟁구경이라도 할 생각인가.'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그러고는 미군의 주의를 끈답시고 [[알류샨 열도]]를 공격해서 귀중한 전력을 무의미한 곳에 박아놓고 [[기무라 마사토미|나중에 구출하러 가느라]] 고생했다. 게다가 알류산 열도 점령은 원래 계획상으로도 미끼용으로 공격만 하는 것일 뿐 점령할 필요는 없었고, 더군다나 원래 계획마저 어그러진 상황에서는 전혀 점령할 필요가 없었는데 [[미드웨이 해전|미드웨이]]의 패전을 가리기 위해 점령을 강행한 것으로, 아무런 전략적 가치도 없었다. 그나마 미드웨이에서 참패했다면 [[반성]]이란 걸 해야 하는데, [[나구모 주이치]]가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정규항공모함 [[류조(항공모함)|류조]]를 미끼랍시고 따로 떼놓았다가 무의미하게 격침시키는 삽질을 했다. 게임에서는 크기가 작다며 경항모 취급이지만 류조는 엄연히 정규항모였고, 미드웨이에서 대패한 후 일본군에는 정규항모가 류조, 쇼카쿠, 즈이카쿠 3척 밖에 없었다. 개조항모인 히요와 준요도 미군은 정규항모로 간주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5척밖에 안 된다. 그렇게 귀한 정규항모를 마구 내다버리면 어떻게 전쟁을 하나?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그나마 미끼 작전은 성공했지만, 그것이 성공했다는 것을 다른 함대에 알리지 못해서 물거품이 되었다. 더 정확히는 알리긴 알렸는데, 그 다른 함대가 받지도 못했고 해당 함대는 자신들의 후방에 미군 함대가 매복해 있다는, 전혀 엉뚱한 정보를 받고 돌아가버린 것이다. 이게 레이테 만 해전의 삽질인 [[레이테 만 해전#s-3.5.4|구리다 턴]]이다. 물론 구리다 턴의 원인은 무전기만이 아니지만. 적의 탐지를 회피하기 위해 함대를 무작위적으로 널리 분산시키는 것은 [[현대]] 미군 항모전단 운용전술에도 쓰이는 기본적인 전술이다. 다만 상호지원이 가능할 정도로는 가까워야 하고, 현대 [[미군]]은 데이터 링크를 통해 모든 함정이 전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일본군의 야간작전계획 같은 것은 실전에서는 쓸 일이 없어서 그나마 문제는 적었다. [[사보섬 해전]]이나 [[타사파롱가 해전]]같은 경우에는 저런 전제가 실제로 적용돼서 상당한 성과를 올린 사례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매번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과달카날 해전]]처럼 먼저 발견하였음에도 오히려 패퇴한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