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문제점 (문단 편집) == 산업기반시설의 준비 미흡 == 일본의 경제력이 기본적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산업기반시설의 준비도 상당히 미흡하여 그나마 확보한 자원을 제대로 못 써먹었다. 전쟁에 필수적인 자원 중 하나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원이 [[강철]]이다. 그리고 강철을 생산하려면 [[제철소]]가 있어야 하며 [[철광석]]을 사용하여 [[제련]], 제강을 거쳐 [[강재]]를 생산하는 선강일관공장(일관제철소)여야 철광석에서 강철을 직접 뽑아낼 수 있으므로 전쟁시에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리고 [[고철]], 환원철, [[선철]]등을 원료로 삼아 제강후 강재를 생산하는 독립제강공장은 제강소라고 부른다. 이런 시설은 고철을 구할 수 없으면 강재를 만들 수 없으므로 철광석이 있더라도 강철을 생산할 수 없어서 전쟁시에 가동하기가 곤란하다. 일본 제국도 이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일관제철소를 가급적 많이 일본 본토에 설립하려고 애쓰고 1934년에는 [[일본제철]](日本製鐵)을 설립하여 관영제철소와 민영제철소를 통합해서 반관반민의 국책회사(国策会社)를 만들어서 강재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생산량을 늘리려고 했다. || 연도 || 선철 || 강괴 || 일반강 압연강재 || 특수강 압연강재 || || 1934 || 186 || 201 || 143 || - || || 1935 || 200 || 237 || 160 || - || || 1936 || 203 || 273 || 181 || - || || 1937 || 216 || 289 || 201 || - || || 1938 || 230 || 305 || 218 || - || || 1939 || 270 || 306 || 222 || - || || 1940 || 283 || 310 || 216 || 0.4 || || 1941 || 344 || 318 || 215 || 0.6 || || 1942 || 337 || 342 || 231 || 0.8 || || 1943 || 356 || 375 || 246 || 4.3 || || 1944 || 309 || 330 || 213 || 12.6 || || 1945 || 102 || 106 || 61 || 7.2 || |||||||||| 생산단위는 1만톤 ||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쟁 직전 및 전쟁시 상황인데도 생산량이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철강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미국을 제외하고라도 영국이나 나치 독일보다도 못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제철 산하의 제철소중 상당수가 일관제철소가 아니라 제강소였고 일관제철소이더라도 완전한 수준이 아니거나 시설 용량이 작았기 때문이다. 기존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면 전쟁시에 써먹기 곤란하므로 기존 제철소의 시설을 늘리고 제강소를 일관제철소로 바꾸면서 필요한 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의 대공사 및 개고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가 신규 제철소를 엄청난 규모로 건설하거나 기존 제철소를 대규모 확장할 때 일본은 기존 제철소의 개판같은 상황부터 바로 잡아야 했던 것이다. 제강소가 많았던 이유도 경제적인 사유가 있었다. 원래 일본 본토의 철광석은 품질이 낮았고 일본 본토에서 생산하는 [[역청탄]]도 품질이 낮아서 철광석을 녹일 때 쓰는 [[코크스]]를 만들려면 차라리 고급 역청탄이 많이 나오는 [[대영제국]]같은 곳에서 역청탄을 수입해서 쓰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덤으로 미국 같은 곳에서 [[고철]]을 수입해서 평로(Open Hearth furnace, OH)를 사용하여 [[중유]]같은 일반적인 연료로 가열하여 고철을 녹여서 [[제철]]하여 쓰는 편이 [[용광로]]를 건설해서 철광석을 코크스를 사용해서 녹이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해서 제강소가 많아졌던 것이다. 평로에서도 철광석을 녹여서 선철로 만드는 게 일단 가능하긴 하나 고로라고 불리는 용광로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이므로 주로 고철을 녹이는 데 많이 사용하였다. 이리하여 일본제철이 만들어진 해인 1934년 10월부터 1937년까지 5회에 걸친 확장계획으로 철강생산량을 늘렸으나 제철소 숫자는 창립 당시의 6개소에서 8개소로 2개밖에 늘어나지 못했고 용광로가 없이 평로만 보유한 제철소가 2개소였으며 철광석등 외부의 자원을 철도같은 육상운송으로도 공급가능한 일본 본토 외부에 있는 제철소도 한반도에 있는 겸이포제철소(兼二浦製鉄所)와 청진제철소의 2개소 밖에 없던데다가 가장 마지막에 만든 청진제철소(清津製鉄所)는 1942년 5월 25일에나 용광로를 가열하기 시작했고 연간 선철 생산량이 35만톤 수준으로 작았다. 여기에 더해서 굳이 제철소같은 중요시설을 일본 본토가 아닌 식민지 따위에 건설하면 안된다는 업계 관계자 및 여론의 문제도 있어서 한반도에 있던 제철소 2개소도 겸이포제철소는 [[미쓰비시 그룹]]이 1918년에 건설했다가 1차대전 후의 해군 군축 및 전후 불황 때문에 용광로 1기만 간신히 돌리는 식의 개점휴업상황에 있다가 일본제철로 넘어가면서 되살아난 것이며 청진제철소도 [[조선총독부]]와 [[조선군(일본 제국)]]이 합동해서 자기네들이 관할하는 한반도에도 일관제철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일본제철의 확장계획과도 연관이 되었기 때문에 건설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철소 통합관리 시작도 늦었다. [[1931년]]에 [[만주사변]]이 터지면서 서방 열강들과 일본 제국과의 관계가 악화하기 시작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1차대전 시기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1931년에 관민합동의 합자회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잡기도 했으나 무산되었고 1933년에서야 일본제철주식회사법(日本製鐵株式會社法)을 만들고 적용을 시작했으나 원래 목표인 11개사중 아사노 재벌(浅野財閥)이 소유한 3개사는 자산평가에 불만이 있다고 참가를 안했고 토카이강업(東海鋼業)은 참여 의사는 있으나 [[주주]]의 반대로 참가를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여 7개사만 참여하는 등의 우여곡절이 많아서 1934년 1월에서야 일본제철이 창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매우 늦은 결정이었다. 추가적으로 일본제철에 참여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보복도 있어서 1936년까지 일본 정부는 아사노 재벌이 소유한 회사에 용광로의 신설을 허가하지 않았다. 용광로 1기가 아쉬운 판국에 미친 짓을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태평하게 시간을 낭비하다가 1940년 10월에 미국이 철광석과 고철을 일본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자 그동안 편안하게 '''평로에서 미국에서 수입한 고철을 녹여서 일본 국내 소요량의 대부분을 충당하던 일본 철강업계'''에 비상사태가 터져버렸고 고철 부족이 심화되자 소련-일본 [[불가침조약]]으로 '''소련에게서 비싸게 고철을 사서 재료를 충당'''하는 [[임기응변]]으로 일단 파국을 틀어막게 된다.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철광석 같은 자원에 인접한 일본 식민지나 일본군 점령지 지역에도 제철소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태평양 전쟁 개전 초반에 일본군의 성과가 좋으니 계획이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버렸고 1942년 이후에 점점 전선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베이징시]] 교외에 있던 중화민국 소속이었던 제철소를 기반으로 해서 1942년 12월에 북지나제철(北支那製鉄)을 설립했다. 하지만 이미 시기는 늦어서 제철소 설비를 늘리려고 해도 신규생산이나 수입이 곤란해졌기에 일본 국내에 있던 제철소에서 시설을 뜯어다가 현지로 이전해서 이설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나중에는 이전할 설비도 모자라서 오사카제철소(大阪製鐡所)를 통째로 해체해서 점령지에 건설할 신규 제철소용으로 써먹으려고 했다. 이미 제철소의 양적 증가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결국 해상수송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일본 내부에서 조달가능한 저질의 철광석과 저급 역청탄같은 상태 안좋은 자원만 사용가능해지면서 1943년을 끝으로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을 시작으로 공습이 격화하면서 제철소들이 피해를 입기 시작했으며 해안가에 위치한 제철소 2개소는 미국 전함의 함포사격을 제대로 두들겨맞고 재기불능상태에 놓이면서 패전하게 된다. 덕분에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쟁]] 기간동안 [[금강산선]]의 창도역 - [[내금강역]] 구간을 뜯어간 것처럼 이미 설치해서 운용중인 [[선로]]와 기반시설을 뜯어서 다른 곳에 사용하는 [[불요불급선]] 같이 아랫돌 빼서 윗돌로 쓰는 답없는 행동을 해야 했고 각종 금속을 공출해가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미 1차대전부터 자립 및 유사시 독자적인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느꼈던 제철소도 저 지경이었으니 다른 산업기반시설인 석유관련산업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을 지경이었으며 이렇게 부실한 산업기반시설은 일본 제국의 전쟁수행능력을 더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