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꺽정(드라마) (문단 편집) == 특징 == 90년대 SBS의 몇안되는 사극이자 제작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44부작으로 [[1996년]] [[11월 10일]] ~ [[1997년]] [[4월 6일]]까지 방송됐는데 [[1996년]] [[11월 10일]] 8시 50분부터 1회 ~ 2회 연속 방영됐으며 이런 이유로 그 날 방송될 뻔한 주말극장 행복의 시작은 결방됐다. 이 과정에서 행복의 시작은 [[1996년]] [[11월 9일]] 8시 50분부터 32회 ~ 33회 연속 편성됐다. <임꺽정>은 충격적인 연출과 철저한 시대 고증을 표방하며 제작되었는데 1995년 초여름부터 촬영을 한 '''반 사전제작 드라마'''이기도 하다. 특히 작품 특성상 1990년대 기준으로 과격한 격투 장면이나 출혈 등이 묘사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실 1980년대 ~ 2000년대는 케이블 채널 방영 영화에서도 흉기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2010년대보다 심의가 자유로웠다.], 이를 적극적으로 묘사하며 리얼리티를 살린 면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1995년 5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드라마의 제목은 '임꺽정'이라 임꺽정이 태어나는 장면 및 임꺽정이 처음부터 나오는 것을 연상하기 쉽지만 정작 임꺽정이라는 개인은 3화에 태어나며,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은 구월산에서 최후를 맞기 직전의 임꺽정이 죽은 가족 및 의형제들을 회상하는 장면이고, 실질적으로는 [[갑자사화]]가 드라마 줄거리의 최초를 장식한다. 그래서 첫 회에 첫 등장인물 소개는 [[연산군]]이 나온다. 유명 배우에 의존하기보다는 실력파 무명배우와 신인배우를 적절히 캐스팅하고 홍명희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져서 내용에 많이 신경을 썼으나 원작이 반쯤 미완이었기에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또한 설원에서 임꺽정이 화살을 맞고 죽게되는 이두호 임꺽정과 같은 결말. 드라마처럼 최후까지 무공을 펼치는 극적인 장면은 아니어도 실제로도 임꺽정은 관군에 의해 사살당하니 어느 정도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 결말 외에도 진상봉물 사건이나 여러 에피소드의 구성과 연출 면에서 이두호 임꺽정을 참고한 장면들이 많다. 원작이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 소설이었고 할수 있는 한 고증을 했던 1990년대에 나온 드라마라서 조선 사람이 현대 서울말 쓰는 요즘 퓨전사극들과는 대사가 확연히 차이난다. [[먹방]]으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하루~며칠 굶은 장사가 밥을 보자마자 반찬이 없거나 매우 허술한 상태에서 허겁지겁 먹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오니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력을 알 수 있다. [[시청률]]도 좋았고 완성도 면에서 2000년대 이후의 SBS 사극들과 비교해도 훨씬 나은 작품이라서 지금도 평가가 좋다. SBS 사극 중 제대로 된 정통사극 대우를 받는 건 이 임꺽정과 1995년에 방영된 [[장희빈(SBS)|장희빈]], 2001년 방영된 [[여인천하]]정도고 [[야인시대]] 이후론 거의 모든 작품이 혹평을 들었다. 그나마 [[뿌리깊은 나무(SBS)|뿌리깊은 나무]]가 퓨전사극이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주제 의식이나 극의 완성도 면에선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정도다. [[한국방송공사|KBS]]의 레전드 사극 [[용의 눈물]] 초반부와 임꺽정 후반부가 방영 시기, 시간대가 겹쳤다. 때문에 용의 눈물은 초반에 시청률 면에서 꽤나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임꺽정이 끝난 후 사극 팬들이 용의 눈물로 몰리면서 용의 눈물 시청률이 매우 높아졌다. 원래 연극배우 출신으로 TV 데뷔가 처음이었던 임꺽정 역의 [[정흥채]]는 이 역으로 무명에서 벗어났다.[* 애초 이 배역에는 [[최민수]], [[유동근]], [[김영철(배우)|김영철]]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이들 중 유동근은 KBS 2TV [[조광조(드라마)|조광조]] 담당 연출자 엄기백 PD의 설득에 <임꺽정>에서 <조광조>로 방향을 바꿨으며 <조광조> 집필자 [[정하연]] 작가는 <임꺽정>과 경쟁한 작품 중의 하나이자 유동근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KBS 1TV [[용의 눈물]] 집필자로 낙점되었으나 <조광조>를 끝낸 지 얼마 안 돼 사극을 쓰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고사했으며 <임꺽정>은 당초 연극인 이윤택 한테 각색을 맡겼지만 "작품 해석상 차이" 때문에 김원석 작가로 전격 교체됐다.] 그러나 이 드라마 최고의 수혜자로 손꼽히는 배우는 다름아닌 임꺽정의 아내 운총으로 분한 [[김원희]]. 독특한 4차원 캐릭터와 묘하게 개성있는 표정 연기 덕택에 단숨에 시청자들의 머리속을 지배했다.[* 하지만 <임꺽정> 뿐 아니라 SBS 일요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쇼 대단한 일요일>, 97년 1월 시작된 자사 주말 드라마 <꿈의 궁전> 등 동일 채널 3회 중복 출연 때문에 따끔한 눈초리를 사야 했다.] 조연 캐스팅이 꽤나 화려하다. 카메오로 나온 폭군 연산군을 [[유인촌]]이 맡았다.[* 참고로 유인촌은 이미 1987년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연산일기'에서 연산군 역할을 연기해서 제 24회 [[백상예술대상]] 인기상을 수상했었다.] 명종은 [[이기영(배우)|이기영]]의 형 [[이효정]]이며 [[문정왕후]]는 미스코리아 출신 [[김청]], [[보우(조선)|보우]]는 [[김학철(배우)|김학철]], 임꺽정의 부친 임돌은 [[박인환(배우)|박인환]], 누이 섭섭이는 [[윤유선]], [[정난정]]은 [[박선영(1970)|박선영]], 임꺽정의 스승 갖바치와 잔나비는 각각 [[이정길]]과 [[정진(1941)|정진]]이 맡았다. 그밖에도 능통의 정승호나 점쟁이 김륜에 [[김주영(1952)|김주영]][* 아래 [[김흥기]]와 같이 이쪽도 겹치기 출연. [[용의 눈물]]에서 회안대군 이방간을 맡았다.], 노밤의 [[윤문식]] 등, 캐스팅이 꽤나 쟁쟁하다. 그리고 작중 임꺽정과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는 토포사 남치근은 [[김흥기]]인데 아이러니하게 당시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으로 출연 중이었다. 쉽게 말하면 동시간대 겹치기 출연.[* 다만, 이 시기에는 겹치기 출연이 크게 문제되진 않았다. 물론 긍정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느정도 연기력과 흥행이 보증된 배우는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후 2000년대에 연예기획사들이 크게 성장하여 동일한 연예인이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상황이 이슈가 되었고, 연예기획사와 방송사 간 갈등이 발생하면서 사실상 겹치기 출연은 불가능해졌다.][* 사실 김흥기 뿐만이 아니라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역을 맡았던 [[김무생]]역시도 동시기에 MBC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서 못난 아버지 역할로 출연해서 연기의 갭을 보여줬다.] 초반엔 임꺽정의 젊은 시절에 [[이지함]](권성덕 분), 소년 시절엔 [[조광조]](태민영 분) 등의 인물도 등장하는데 시대적으로 맞지 않다. 드라마상으로 임꺽정은 1521년 생인데, 1517년 생인 이지함과는 비슷한 연배여야 하지만 이지함은 노인으로 등장하며,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1519년이므로 임꺽정이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촬영을 위해서 경기도 양주시의 기산저수지 인근과 철원군 근남면에 세트장을 설치했다. 양주 세트장에서는 한양 남소문 장면을 촬영했고 철원 세트장에서는 청석골 장면을 촬영했다. 양주 세트장은 이후 철거했으며, 철원 세트장은 이후에도 드라마 덕이, [[다모]] 등을 촬영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