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꺽정 (문단 편집) === 정말 잡았는지의 의문 === 다만 이전에 [[가짜]] 임꺽정 체포로 여러 번 곤란을 겪었던 점, 명종이 임꺽정의 [[범죄]]를 [[역모]] 행위로 간주하여 좌의정과 우의정에게 임꺽정이 잡히면 [[궁궐]]에서 심문을 지시했던 점(명종 16년 9월 7일), 임꺽정을 체포한 후 1월 13일 내통자 서림의 처형을 논의한 점, 1월 17일 형조에서 "도적의 괴수는 이미 처단하였습니다."라고 아뢴 기록 등을 종합해보면 임꺽정은 1월 3일쯤 체포되자 한양으로 압송되어 1월 8일쯤 임꺽정의 신분을 확인하고 1월 13일쯤 일당들과 같이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해서 백과사전 등에서는 그저 막연히 임꺽정이 사로잡힌지 15일만에 처형되었다고 써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전에 1월 9일에 사간원이 올린 글에서 임꺽정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언급이 된다. 그 이튿날인 1월 10일에 임꺽정을 토벌한 남치근의 부대가 한양으로 올라왔기에 명종이 남치근을 만나 토벌보고를 듣기도 전에 임꺽정을 급히 처형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임꺽정이 정말로 처형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애초에 '도적의 괴수를 이미 처단하였다'는 저 말부터가 한양에 압송되기 전 남치근이 임의로 즉결처분했거나 임꺽정이 부상으로 사망한걸 토벌군과 조정의 공로를 띄우기 위해 처단한걸로 치는 [[뉘앙스]]로 읽힐 수도 있을 뿐더러 그렇게 전국을 뒤흔든 도적이면 참수한 후 저잣거리에 [[머리]]를 효수할 법도 한데 기록에는 그런 행적도 없다. [[야사(역사)|야사]]인 《기재잡기》에 따르면 임꺽정은 군관 곽순수와 홍언성 등의 토벌군들에게 포위당하여 탈출할 길이 없어지자 토벌군 복색으로 변장한 후 꾀병을 부리면서 은근슬쩍 뒤로 빠지려고 했는데 토벌군 병졸들이 이를 수상히 여겼고 마침 서림이 임꺽정을 알아보고 토벌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들켜 급히 도주하였다. 추격하는 토벌대가 [[화살]]을 난사하자 임꺽정은 결국 여러 대의 화살에 맞은 후 "내가 이렇게 된건 모두 서림 때문이다. 서림아! 서림아! 네가 어찌 관군에 투항할 수 있느냐?"라고 서림을 질책한 후 [[사망]]하였다는 야사가 있다. 실록에서 자세한 정황을 설명을 안해놨기에 아무리 개인문집인 기재잡기의 기록이라 해도 일단은 이것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는데다 실록에서 임꺽정이 별다른 앞뒤 설명도 없이 그저 죽었다고만 기록했기에 이를 토대로 보면 남치근으로부터 단순히 임꺽정의 신변을 확보했다는 보고만 들은 조정이 6일이나 지나서야 임꺽정이 죽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