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나일본부설 (문단 편집) === 한국 학계 === 《일본서기》는 과장이 많지만 [[백제]], [[가야]]에 대해 한국 기록에 없거나 자세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정보가 많아 백제사, 가야사 전공 학자들에게 연구가 많이 되고 있는데, 일본서기에 기록된 '통치기구 임나일본부' 그 자체는 한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대신 가야를 지배했다고 하는 《[[일본서기]]》의 '왜'가 실제로는 백제라는 견해와 앞서 말한 한반도 내 일본 군사 세력의 잔영이라는 백제군사령부설이 있다. 최근에는 임나일본부는 왜의 통치기관이나 백제의 군사령부와 같은 것이 아니었으며, 임나(任那)와 [[안라국]](安羅)에 파견된 왜의 사신인 기비노오미와 가와치노아타이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무튼 기존의 일본 사학계가 주장하던 식민지설은 점차적으로 폐기되는 추세이다. 일본인들이 지진, 태풍, 화산 폭발 등의 재앙을 피해 떼를 지어 한반도로 도망쳐온 것이 임나일본부의 실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인이 아니라 통치 기관이 자연 재해 때문에 머나먼 타지인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말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냥 '이런 설도 있다'는 차원에서만 보는 것이 맞을 듯. 다만 이 설을 차용한다면 6세기 초반에 갑자기 임나일본부의 기록이 사라진것도 '한반도에 피난온 일본인들이 재해가 끝난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긴 하다. 일본서기의 서기 534~540년 시기에 안라국에 어떤 하나의 기관을 설치하고 왜인을 파견하는 부분이 있다. 《일본서기》에서는 이 기관의 이름을 임나일본부 또는 안라일본부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위 서술처럼 임나일본부 식민지경영설로 악용되었기도 했고 일본부라는 용어 자체도 당대에 사용되지 않은 등 문제가 있어 현대의 한국 학자들은 이 기관의 이름을 임의로 '안라왜신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안라국]]에 설치된 왜인들로 이뤄진 기관이란 의미다. 게다가 《일본서기》 기록상 이 안라왜신관에 최초로 파견된 인지미(印支彌)라는 왜인을 파견한 것이 백제 성왕이었던 것으로 묘사되는데, 안라왜신관이라는 기관은 왜국이 아니라 백제에서 설치했다고 보는 게 한국 학계의 의견이다. 그리고 정작 《일본서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안라왜신관의 왜인들은 왜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지 않고 때로는 왜왕의 의도와 반대되는 짓을 해서 왜왕이 당황하는 상황까지 나오는 등 왜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기관이란 모습이 자주 보인다. || [[파일:cc4YAWw.jpg|width=100%]] || || [[파일:tn6eyoV.jpg|width=100%]] || || [[파일:KIoCvFj.jpg|width=100%]] || || [[파일:KnsS4rD.jpg|width=100%]] || || [[파일:ZH6Ec1q.jpg|width=100%]] || || [[파일:cK2LgPp.jpg|width=100%]] || ||[[안라국]][* 흔히 말하는 아라가야]에 존재했던 안라제왜신을 가리켜 임나일본부라고 부른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서기]]》에 나온 기록에 의하면 부(府)를 "미코토모찌"라고 불렀는데 이는 관청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