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성민(남배우) (문단 편집) === 사망 === 그러나 그는 1990년 [[간염|만성간염]] 판정을 받았고, 당시 인기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다작출연을 했다. 1993년 [[MBC]] [[폭풍의 계절]] 출연 도중에 간질환으로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이에 그는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하는 등 자기관리에 힘쓰는 듯 했으나, 조금 회복되자 다시 격무를 스스로 자초하여 1995년 5월 드라마 출연하던 중 또다시 쓰러졌다. 쓰러질 당시에도 [[SBS]] [[고백(1995년 드라마)|고백]], [[MBC]] [[사랑과 결혼]]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고, [[김호선]] 감독, 장미희 등과 함께 [[멕시코]] 올 로케로 찍고 있었던 영화 '[[애니깽]]'[* 미완성 상태에서 대종상을 받아 논란이 된 그 작품 맞다. 1997년 12월에 지각 개봉했다.]도 촬영 중일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건강 악화로 하차하면서 [[사랑과 결혼]]은 [[손창민]]이 그의 대타로 출연하였으며 결국 이 드라마는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당시 그가 전속모델로 활동하던 신원에벤에셀의 남성복 "모두스 비벤디"의 광고모델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정보석]]으로 교체됐다. [[간경변|간경화]]로 결국 8월 20일 저녁 [[서울특별시|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같은 시기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부상자들도 이 병원에서 수용되어 있었다.]에서 향년 3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충청남도 [[예산군]] 선영에 묻혔다. 당시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하였지만, 간 이식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당시 간치료 권위자였던 주치의 김부성 교수가 당시 막 방영된 [[SBS]] [[한밤의 TV연예]] 1995년 8월 3일 단독 취재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입원중에도 항상 일에 몰두해 있었을 정도로 일 중독이었다고 회고했다. 월간 영화잡지이던 <스크린> 1986년 3월호 기사 중 "2000년대에 대한 미래는?" 이라는 기사의 인터뷰에서 "...[[미중년|난 중후하게 늙고 싶으며]] ....외모보단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OTT|미래에 독자들이 컴퓨터 버튼 하나로 영화를 볼 시대가 올지 모르지만]], [[아이맥스|넓은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게 매력이다." 라는 말을 했다. 슬하에 1녀를 두고 있었는데, 승무원 출신인 일본인 부인과는 1981년에 결혼했다가 1984년에 이혼했다. 딸은 임성민이 키우고 있었고, 전처는 미국에서 생활했다.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딸에 대한 애뜻한 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