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요환 (문단 편집) == 평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game.donga.com/starcraftever041116_01.jpg|width=100%]]}}} || 임요환은 단순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e스포츠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임요환이 없었다면 지금같이 커진 e스포츠판은 없었거나, 훨씬 늦게 나왔을 가능성이 크며 특히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임요환이 전성기를 맞아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은, 2000년 [[IT버블]] 붕괴의 여파로 e스포츠라는 판이 사라지느냐 마느냐의 위기를 맞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기존 게임단들과 후원 기업들, 스타리그 개최 회사들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온게임넷 측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임요환이라는 스타를 중심으로 판을 재구성하였고, 그 결과 e스포츠라는 판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으며, 계속해서 발전하여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 '''후배이자 나아가 e스포츠의 상징이 된 [[이상혁|페이커]]가 있음에도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가 e스포츠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줬음을 알 수 있다.''' 임요환은 테란이 약소 종족이었던 시절 특유의 바이오닉 컨트롤과 참신한 전략으로 '''테란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으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2연속 우승 및 양대리그 3회 우승, [[World Cyber Games|WCG]] 스타크래프트 부문 유일한 2연속 금메달, 최고령 개인리그 결승 진출 등 화려한 기록을 세웠다.[* 실제로 어르신들은 임요환을 알고 있다. 현재 50~60대가 되신 분들도 임요환의 인지도는 있는 편이다. 특히나 임요환의 전성기를 직접 겪은 30대 중반~40대 남자 세대(주로 80년대생)는 임요환을 모를수가 없다. 덤으로 WCG 스타리그 초대 우승자를 임요환 으로 알고 있는데 최초 우승자는 T1에서 활동하던 동료이자 후배 게이머인 [[박태민]]이다.] 다른 업적들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선수로서도 충분히 [[레전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한 위업은 바로 '''게임의 프로스포츠화'''이다. 임요환이 SK를 끌어들여 기업팀을 창단하기 전까지의 프로게이머는 대회 상금에만 의존하는 매우 불안정한 직업인 것이 현실이었으나[* [[신주영(프로게이머)|신주영]]의 등장으로 직업이라는 인식은 있었으나 세간의 인식은 상금 헌터 수준에 불과했고 해외에서도 선수의 취급은 2010년대 전까진 그러했다.] 이를 K리그나 메이저리그 같이 정기적으로 리그가 열리고 기업과의 계약서대로 연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의 일을 하는 제대로 된 직업으로 정착시킨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 이런 활약이 없었다면 프로게이머는 과거 랜파티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대회 상금만으로 연명하다가 소멸하는 직종으로 전락했을 것이라는 관점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기로는 그야말로 일류인 국군을 움직이게 만들어 '''세계 최초의 군 프로게임단'''인 [[공군 ACE]]를 창설 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창단 조건이 임요환의 공군 입대였다. 거기다가 당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덕이라고 임요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언급.] 수많은 후배들의 커리어를 끊기지 않게 하는 등 그야말로 e스포츠계의 대부라고 할수 있다. 또는 e스포츠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 라는 소리도 간간히 들었다. 게이머 생활 도중 각종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 e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홍보 대사 역할도 했다. 2003년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방영한 [[아침마당]]에 출연해 [[게임 중독|게임 중독자]]로 오인을 받은 에피소드도 있지만[* 사회자인 이상벽씨와 이금희씨는 진행 내내 선수에게 모욕적인 이상한 질문들만 하는 바람에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켰다. 그나마 임요환이 그 질문 하나하나에 인터뷰를 해서 다행이지 이게 2020년대 현 상황이였으면 PD부터 방송국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을뻔 했다는 것이다. 후일 종목은 같아도 다른 게임의 후배 [[이상혁|페이커]] 선수는 훌륭한 선수에 대한 모욕이라 평하며 이를 비판했다.] 2006년 파워 인터뷰에 나서면서 업그레이드된 e스포츠의 이미지를 세상에 알렸다. 이 밖에도 출발 드림팀, 브레인 서바이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섰고 영화 '도둑맞곤 못살아', KBS 드라마 '사랑은 이런거야' 등에 출연하면서 e스포츠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한때 임요환은 맵과 유닛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서 이기는 전략형 게이머였고, 이는 [[빌드 오더]]와 [[테크 트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는 재미로서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겜덕과 매니아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대의 해외 리그와는 전혀 다른, 차별화된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방송사에서는 매 주 정기적인 '경기'가 열리고, 임요환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전략'을 준비해온다. 이 차이는 거대했다. 헤일로, 콜 오브 듀티 등의 FPS 게임 리그가 주력인 [[MLG]]를 보면 3일 만에 수백여개의 경기가 치러지고 대회가 끝이 난다. 임요환처럼 초단위로, 한 경기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오는 게이머들을 낳을 수 없는 구조이다.[* 물론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해외는 국토가 넓고 국적이 다양해 대한민국처럼 e스포츠 팬들의 인구 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요환의 다양한 전략과 화려한 쇼맨십은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문외한들조차도 스타리그에 입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WCG]] 브루드 워 부문 2연속 우승 등의 기록을 세웠으며, 여러 방송 출연으로 게임 경기 밖의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당대 [[브루드 워]] 초기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연예인'과 비슷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이슈를 만들 줄 알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두고 최연성은 "임요환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승부욕이라든가, 플레이 중에 사장된 유닛이나 [[빌드 오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킨다든가 하는 점은 그를 '자유스럽고 독특한 캐릭터'로 기억하게끔 했다. 쇼맨쉽이나 입담이 탁월한 편이라 게임 밖으로도 여러번 이슈를 낳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젊황제.jpg|width=100%]]}}} || 안티들에게 외모로는 머리가 크다고 놀림받지만, 그 시절 일반인들이 칙칙한 게임 폐인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프로게이머 중에서 나름 핸섬하고 말끔하게 생긴 선수가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외모란 것이 절대 기준이 없다지만, 임요환이 갓 등장할 무렵 기성세대의 '게임하는 아이'를 보는 인식은 '어두컴컴한 오락실에서 담배나 찍찍 피우면서 애들 동전이나 뜯는 양아치'였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임요환의 외모와 기럭지는 그 인식을 송두리째 뒤집을 만큼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브루드 워]]판에 여성 팬덤의 비중이 어느 정도 늘게 된다. 한때, 오프라인에서 [[송병구]]나 [[박성준(1986)|박성준]]처럼 남성 팬의 환호성이 크다는 것이 오히려 화젯 거리가 될 정도. 대부분은 여성들 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임요환 이후로 프로게이머에게서 [[아이돌]]의 가능성을 찾게 된 방송가들은 게이머들을 분장시켰고,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따로 외모를 관리하는 선수들이 생기며 칙칙한 게임 폐인이 아닌 '게임하는 멋진 오빠들'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이 가능성을 본 게임 게임단과 스폰서 차원에서 게임 훈련 외에 헬스장 가는 시간 또한 공식 편성했을 정도, 그렇게 몸을 만들어 게임 외적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든 게 [[박정석]]이다. 이것은 '한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로서 그 선수를 존경하는' 경우가 많은 다른 게임계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WCS]] 예선전에서 이제동이 출전하자 목동을 가득 매운 여성 관중을 보며 곰TV 해설진이 여성이 많이 왔다며 주목하기도 하였다. 당시 전 소속 팀이었던 오리온이 해체되고, 스폰서가 없이 4U라는 팀으로 꾸릴 때, 임요환에게 억대 연봉의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E스포츠의 판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라며 거절했고 그 결과 SKT T1이 창단 되었다. 그리고 SKT T1에서 임요환은 국내 프로게이머 최초로 억대 연봉을 체결했다. 물론 이전에도 스폰서를 받는 게임단은 있었으며, 스타리그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것은 임요환만의 공은 아니며 다른 훌륭한 게이머들의 노력이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억대 연봉 계약을 게이머 최초로 체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란 상금 사냥꾼이었고, 워 3나 스타 2에서 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게이머들도 있지만 이는 네이밍 스폰서로서 전면 지원보다는 조금 더 느슨한 계약 관계이며, 선수들 역시 연봉보다는 대부분 상금에 의존해 생활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스타 1은 조금은 다른 양상이 되었다. 개인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신상문]]이 프로리그의 성적으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해외에서는 드문 일이다. 즉, 임요환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고정 수입이 없는 불안정한 직업에서 고정 수입이 있는 안정된 직업으로 바꾸는데 선봉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전 까지는 해외에서는 e스포츠라고 하면 대회에 나가서 상금 타먹는 것이 끝인 '''상금 헌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처럼 게임 회사가 직접 지원해준다는 개념은 커녕 한국처럼 기업이 제대로 팀을 지원을 해 준다는 개념은 극히 드문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팀은 각 게임의 모임이었던 클랜에서 발전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돈벌이가 좋았냐면 그것도 아닌게 2011년 전까지 단일 게임에 50만 달러 이상의 총상금을 걸은 대회는 없었으며, 각 나라별 대회 상금 총합 액수는 미국과 대한민국이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프로게이머 숫자는 한국이 더 적었고, 한국 팀과 미국 팀이 상금 총액이 비등하던 시절이었다. 결정적으로 미국은 다양한 게임 대회가 열려 사실상 각 게임 대회의 영향력은 더 적었던 것에 비해 '''한국은 스타크래프트에 올인 하는 구조였기에 영향력이 차원이 달랐다.''' 인구 수와 경제 규모만 봐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던 대한민국과 미국의 e스포츠 규모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임요환이 대한민국 e스포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수 있다.[* 이후 2011년이 되면서 도타 2의 TI가 16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최고 금액의 총상금을 내걸고, 리그 오브 레전드가 게임사가 직접 팀을 지원해주는 식으로 돈이 된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면서 규모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물론 바둑이나 테니스처럼 개인전 단위의 상금 헌팅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포츠도 얼마든지 있긴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상금 헌팅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PC방 행사 돌고 그걸로 방값, 라면값 채워서 합숙소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개인 스트리밍 방송도 없었고, 심지어 방송사도 유료 티켓 하나 팔지 못하는 구조였다. 그런 와중에 씬의 발전을 위해 기대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대기업의 투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임요환은 이 투자를 개인이 아닌 팀 단위로 돌렸다. 이유로 임빠는 후배 게이머들을 위한 임요환의 각별한 희생이라 할 것이고, 임까는 그냥 개인 성적을 위해서도 합숙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임요환이 정말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지속하고 발전시켜야 할 프로씬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은 명백하다. 만일 임요환이 이때 그냥 개인 스폰서를 받았다면? 다른 건 몰라도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2012년, 나아가 아프리카 방송 시대를 포함하면 현재까지도 이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임요환이 e스포츠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가 초대 슈퍼 스타인것도 있지만, 이렇게 [[e스포츠]]를 하나의 프로 스포츠로 인정받게 한 데 혁혁한 공이 있는 것도 한 몫한다.[* 2010년대 최고의 인기 게이머 페이커가 단순히 선수로써의 인지도는 임요환을 능가하였지만, 대한민국 e스포츠의 개척자라는 임요환의 상징은 e스포츠의 어느 스타와도 비교될 수 없다.] 스타판의 역사를 농담 삼아 임빠와 임까의 빅뱅으로 표현하는데, 이후 [[프로리그]]의 발전 방향을 보면 정말로 그랬다. SKT가 팀을 창단하고 투자하기 시작하자 경쟁 통신사였던 kt는 'e스포츠판 [[갈락티코스]]' 정책을 표방하며 그동안 명목 수준으로 유지했던 당시 KTF 매직엔스를 개편해 박정석, 홍진호, 조용호 등을 대거 영입하며 수많은 억대 연봉 프로게이머를 탄생시켰고, [[팬택]]이 투나SG를 인수해 팬택 앤 큐리텔 큐리어스를 창단하며 이윤열에게 3년 6억의 계약을 맺으며 "프로게이머 최고액 계약을 맺었다!"라고 언플을 때리는 등 기업들은 경쟁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스타 게이머를 중심으로 스폰서를 받아 팀을 창단하는 구조는 박성준의 POS, 오영종의 Plus 등 다른 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2007년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공군 ACE(물론 이 또한 임요환의 입대로 만들어진 것이다)를 포함해 12개 게임단이 경쟁하는 주 5일 프로리그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프로게이머로써의 자세도, e스포츠 관계자로써의 자세도 군더더기 없는 모범생으로 임요환이 까이는 부분은 지나치다 싶은 승부욕이 부른 부작용이지, 게임 외적으로 문제된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임요환이 관계된 가장 큰 사건인 [[슬레이어스 해체 사건]]에서도 절대로 돌출된 행동을 하지 않는 등 생불이 아닌가 싶을 모습을 보여주었다. 임요환은 국내 스타 팬덤 문화와 방송을 만들어낸 간판임이 분명하다. 물론 그의 공로를 주목한 [[엄재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포장도 포장지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임요환이 없었다면 엄재경이 아무리 애를 썼어도 팬덤 문화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 e-스포츠판의 저변이 스타크래프트 단일 종목에서 여러 다른 게임들까지 넓어지면서 스타 2에는 [[정종현]]/[[어윤수]]/[[조성주(프로게이머)|조성주]], 카트라이더에는 [[문호준]]/[[유영혁]],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이상혁|페이커]]/[[강찬용|앰비션]]/[[고동빈|스코어]], [[오버워치]]에는 [[류제홍]]/[[방성현|쪼낙]]/[[이재혁(1998)|카르페]] 등의 여러 스타 선수들이 생겨났지만, 그 스타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게임판과 무대를 깔아준 시초는 임요환이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물며 만일 임요환 자리에 [[마재윤]] 같은 승부조작 가담자가 있었다면 e스포츠는 태동기에 떡잎부터 부러졌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으로 임요환을 높이고 [[김슬기(프로게이머)|김슬기]]나 김대건처럼 임요환과 동시기, 혹은 약간 이전의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테란 게이머들은 베틀넷 1.07 버전 업데이트 후, 임요환 이후 세대에게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 임요환 개인의 창발이 아니었던 것들이 임요환의 창발로 여겨지는 등. 또한 그의 뒤를 이어 시대의 지배자로 등장한 [[이윤열]]은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구세주이자 가장 큰 흥행카드였던 임요환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팬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악성 팬덤은 어느 게이머에게나 존재했다. 스타판은 임빠와 임까로 나뉜다는 말처럼 많은 팬 수만큼 악질 안티에게 시달린 것이 임요환이다. 재밌게도 이와는 별개로 이윤열과 사석에서의 사이는 좋다. 결승전에 마우스를 빌려주는 등 이윤열의 임요환 군 입대 고별사를 보면 존경의 마음이 거짓이 아님이 느껴진다. 그냥 방송에서 대놓고 "요환이 형이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게 이윤열이었다. 그리고 임요환이 병역의 의무로 입대할 시기가 되자 [[공군]]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연예병사]] 같은 홍보 병과로 [[공군 ACE]]를 창단해서 후배 프로게이머들의 병역 특례를 시켜 주었으며, 프로게이머로서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에 임요환은 정장 대신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3489356|SKT T1 유니폼을 입고 갔다.]] 또한 임요환하면 팬 서비스 정신을 빼놓을수가 없다.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게이머가 팬 서비스 정신을 착실히 가지고 있었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은 물론이거니와 여 타 스포츠 선수들과 비슷한 개념으로 자신이 프로 선수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게이머를 계속하고 있었다. 임요환이 TV에서 나온 인터뷰에서 한 말을 보면 임요환이 어떤 마인드로 프로게이머를 했는지 알 수 있고, 왜 e-스포츠의 개척자인지 알 수 있다. > "팬들의 후원이 가장 컸던 거죠. 진짜 모든 선수들은 공감할 거에요.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팬들이 없으면 그냥 혼자 친구들하고 노는 그 정도 밖에 안돼요. 게임을 문화로 바꿀 수 있는건 많은 팬들이 모였기 때문이지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게임이 문화로 바뀌는 건 아니거든요. 게임은 게임으로 남는걸 그 많은 사람들이 문화로 바꿔놓은 거죠. 그게 팬들이 가진 힘이에요." >---- >[[tvN]] 특집 다큐 '임요환의 날개' 에서 한 말.[* 이는 [[최희암]]의 유명한 명언인 '너희들이 볼펜 한자루라도 스스로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 너희 같이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주업으로 삼으면서 돈 벌고 대접받고 하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팬들에게 잘해야 된다.'랑 일맥 상통한다. 이미 스포츠로써 대중적인 농구선수들이 하는 마인드를 임요환이 가지고 있었다는 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