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재덕 (문단 편집) == 소개 == 前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초기 '''저그의 유일한 희망이자 정점에서 군림했던 자'''.[* 이는 다른 다른 종족 팬덤에서 봐도 인정하는 점이다. 2011년 당시 각 종족별 최고로 꼽히던 정종현과 장민철이 별명이 각각 '왕'과 '대통령'이였던 것에 비해, 임재덕은 '''신'''이였다. 그래서 이를 이용한 유명했던 개그로는 [[장민철]]은 임기가 다되면 끝나고(대통령), [[정종현]]은 죽으면 끝나지만(왕), 임재덕은 영원하다는 것(신).] 또한 '''30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30대는 [[게임]]을 잘 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순 선수'''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스타1 시절에는 방송 경기 등에 잘 나오지 않아서 그다지 이름을 떨치지 못한 게이머였다.[* [[온게임넷 스타리그]]고 [[MSL]]이고 모두 본선에 1번도 나오지 못한 게 컸다.] 그러나 사실 아마추어 시절 때는 꽤 유명했던 게이머[* 이제동이 말하길 아마추어 저그 중 끝판왕이었다고.]였다. 위의 입상 경력에도 나오듯이 2001년에도 대회 입상 경력이 있을 정도로[* 게임아이 주장원전은 프로와 아마가 다 나오던 대회였다. 거기서 우승했다는 것은 이때 이미 프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이 있었다는 뜻.] 그때부터 아마 초고수로 유명했으나 프로게이머 데뷔가 한참 늦어졌고 그러다 보니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다. KT 시절에는 주로 [[박정석]]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팀전에서 활약했다. 그 유명한 [[이승훈(프로게이머)|18토스]] 사건 때의 상대 선수가 바로 임재덕. 군 입대 전에는 여러 게임단의 입단 제의를 사양하고 아마 고수로만 남아 있다가, 프로게이머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의 [[소집해제]] 후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따고 [[드래프트/스타크래프트 시리즈#s-2.4|2006년 하반기 드래프트]] 때 추천 선수로 [[KTF 매직엔스]](現 [[kt 롤스터]])에 입단,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개인전에서는 예선을 여러 번 돌파하였을 정도로 출중한 기본기를 보였으나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주로 [[팀플레이]]에서 활동했다.[* 다만, 이 시기가 KT의 암흑기였던 탓에 임재덕 외의 타 선수들은 예선조차도 뚫지 못하는 일이 일상다반사. 연습량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쇼부로 개인리그 예선, 팀플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서 팀 내에서 불린 별명이 '''봉영이'''였다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08-09 시즌]] 후 프로리그가 올개인전으로 전환되면서 개인전 출전 기회도 생겼으나, 프로리그에서는 [[조병세(프로게이머)|조병세]]와의 경기만이 유일한 프로리그 경기였고, 그마저도 [[패배]](...). [[서바이버 토너먼트]]도 2번 치렀으나, 올패배(...). [[2009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08-09 시즌이 끝난 후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코치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자신이 지도하던 [[박찬수|찬레기]]가 [[영구제명]] 당하는 등 여러가지 풍파를 겪다가 결국 저그 코치직을 반납하고 팀을 떠나 [[스타크래프트 2]] 게이머 활동을 선언하면서 다시 [[프로게이머]]로써의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TG삼보-인텔 GSL 오픈 시즌 1]] 탈락 이후 [[정종현]], [[최인규(1981)|최인규]] 등의 전 프로게이머들과 함께 스타크래프트2 게임단 [[IM]](現 [[LG-IM]])을 결성하여 실력을 갈고 닦게 되었다. 그동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으면서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2]]의 우승의 기쁨을 맞보면서 저그의 희망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Sony Ericsson GSL 오픈 시즌 3]]도 아쉽지만 준수한 성적을 지속적으로 내는데 성공한다. 2011년 정종현이 잠시 주춤했던 중반기에 2회 연속 우승, 최초 3회우승의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면서 '''전지적 재덕시점'''이라 불리우며 저그의 대표 선수로 불리우게 되었다. 그러나 후반기 정종현의 재도약으로 GSL 상위 라운드에서 번번히 정종현을 만나 발목을 잡히며 이후의 입상은 이루지 못했다. 2012년에 들어서면서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눈에 띄는 집중력의 저하를 보여주며 아쉬운 플레이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코드 S는 유지하며 '''[[임재덕 상]]'''이라는 상을 만들어내며 위엄은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은 [[2012 HOT6 GSL Season 4]]에서는 정말 맥없이 무너지며 [[삽라인]]에 가입하고 만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프로게이머로써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듯 하다. 다만 이전에도 슬럼프에서 한 번 복귀해 화려한 우승을 한 적이 있고, 성적이 하향세를 그리다가도 다시 올라오는 등 여러번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만큼 그의 화려한 부활을 다시 한 번 바라는 팬들이 많다. 정종현과 마찬가지로 2013년 WCS 체제에서 해외로 활동무대를 옮겼으나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정종현은 우승1번은 했지..~~ 지속적인 실력의 침체기를 겪다가 결국은 프리미어급 대회에서 이름이 보이지가 않는 상황까지 처하고 만다. 게다가 2015년에는 WCS 체제변환으로 인한 강제적 한국무대 이동 이후에는 더욱더 실력 격차가 벌어진 국내 선수들에게 밀려 당장 예선 뚫기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스타리그 예선에 참가했으나 조성호에게 2:1로 패해 탈락했다. 채정원의 알긋냐에서 "최근 눈이 침침해 미니맵이 잘 보이질 않는다"라고 했다. 사실상 프로게이머 활동을 더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 보여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며, 현재는 사실상 은퇴하였다. [[어윤수]], [[박령우]], [[강민수(프로게이머)|강민수]] 등 저그 후배들이 쩌그 임재덕의 기록을 깨려고 시도하지만, 스타 2가 생긴 이래 아무도 이 불세출의 기록을 경신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타이기록이 있었다가 없어졌다-- 국내 프리미엄 리그 우승 기록에서 2회 우승을 이룬 저그 프로게이머가 아직도 나타나지 못했다. 김원기, 박수호, 권태훈, 신노열, 김민철만이 GSL 1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 종족까지 확장한다면, 테란 이신형이 3회 우승을 이뤘고, 정종현, 조성주는 4회까지 기록을 쌓았다. 프로토스는 지금까지 장민철 및 주성욱이 2회 우승 기록을 쌓았다. --근데 저그는...? 2회 우승자가 없다.-- '''[[이병렬]]이 [[2021 GSL Season 1]]를 우승하면서 3회 우승자가 생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