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진왜란 (문단 편집) ==== 왜 잘못 알려졌는가? ==== 민간에 널리 퍼진 설이 거짓이라는 것은 사료만 찾아봐도 알 수 있었다. 1900년대 초 도쿠토미 이이치로(도쿠토미 호소)의 근세일본국민사(1918)에서도 사실이 아님이 지적된 바 있었다. 2010년대 한중일 학계의 연구 역시 속설이 가짜임을 밝히고 있다. 다음 내용은 이에 관한 논문과 연구들을 요약한 것이다.[* 豊臣秀吉의 冊封問題와 壬亂期의 講和交涉, 임진 전쟁기 강화 교섭 연구,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c/main.do?levelId=kc_i305500&whereStr=%40where+%7B+IDX_TITLE%28HASALL%7C%27%EC%9E%84%EC%A7%84%EC%99%9C%EB%9E%80%27%7C100000%7C0%29+or+IDX_CONTENT%28HASALL%7C%27%EC%9E%84%EC%A7%84%EC%99%9C%EB%9E%80%27%7C100%7C0%29+or+IDX_ALL%28HASALL%7C%27%EC%9E%84%EC%A7%84%EC%99%9C%EB%9E%80%27%7C1%7C0%29+%7D+and+%7B+IDX_TITLE%28HASALL%7C%27%EC%B1%85%EB%B4%89%27%7C100000%7C0%29+or+IDX_CONTENT%28HASALL%7C%27%EC%B1%85%EB%B4%89%27%7C100%7C0%29+or+IDX_ALL%28HASALL%7C%27%EC%B1%85%EB%B4%89%27%7C1%7C0%29+%7D|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연대기]], 大君外交と東アジア, 한일 문화 교류 기금의 [[https://www.jkcf.or.jp/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0/2-05k.pdf|동아시아 세계와 文祿・慶長의 役]], [[https://www.jkcf.or.jp/wordpress/wp-content/uploads/2019/11/1_1_2j.pdf|文禄・慶長の役(壬辰倭乱)]], 임진왜란과 강화교섭-쓰시마번과 고니시 유키나가를 중심으로, 임진왜란기의 강화교섭과 加藤淸正, 임진왜란기 일ㆍ명 강화교섭의 파탄에 관한 一考察 사명당(松雲大師)ㆍ加藤淸正 간의 회담을 중심으로,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0700.html|기사]]] 사료를 검토해 본 한중일 학계의 결론은 이 이야기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유학자와 병법가들이 내용을 왜곡하여 기록하였고 이게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해당 이야기가 실제 사실인냥 알려졌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일본적인 것을 강조하는 [[국학(일본)|국학]]이 등장하면서 자국을 높이고 타국을 깎아내리는 풍조가 성행했다.[* 국학자들이 주목하였던 것이 신도와 천황이었고 일본 전통사서들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내용이 임나일본부설의 바탕이 된 일본서기의 [[진구 황후|신공기]]이다.] 책봉의 진상을 알고 히데요시가 화를 내고 강화를 깼다는 왜곡된 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가 아닌, 에도시대의 유학자 [[후지와라 세이카]]의 제자인 호리 교안(堀杏庵)이 1659년 출판한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것은 이후 병법가인 야가마 소코(山鹿素行)의 '무사가기', '신편무사가기'(1673년)에서 책봉문을 찢었다는 내용으로 발전하였고, 유학자 하야시 라잔의 '풍신수길보'에 윤색되었다. 이는 [[국학(일본)|국학자]]인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1796년 펴낸 어융개언(馭戒慨言)에서 임진왜란이 한반도를 재복속하는 것이고 조선통신사는 조공사라는 내용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은 당대 유명한 학자들이 쓴 것은 맞지만 사실을 기록했다기보다 당시 유행한 국수주의적 [[국학(일본)|국학]]의 관념을 깔고 있는 것이었고 일본을 미화하는데에 집중한 것들이었다. 이 책들이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히데요시의 강화 파기에 대한 잘못된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일본의 자국 찬양과 한반도의 멸시, 나아가 정한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