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진왜란 (문단 편집) === 육전은 의병과 승병의 독무대? === 과거 조선의 군사·행정체계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미진하던 시기에는 '조선 정규군은 이순신을 제외하고는 한 것이 없고 육군 중에도 권율같은 일부 명장을 제외하고 무능해서 의병으로 때웠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조선 관군은 비록 임란 초기에 상정한 규모를 넘어서는 일본군에 맞서 싸우는 바람에 무력한 모습을 보였으나 전쟁 중반기에 실전 경험이 쌓이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 조선 전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소규모의 유격전, 공성전 등의 승리는 관군이 이루어낸 것이다. 의병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도 했지만 관군과도 자주 힘을 합쳐 활동했다. [[제승방략]]에 의해 조정에서 보낸 장수가 농민병인 정병을 집결시켜 지휘하면 그게 관군이고, 그 장수가 없을 때 (싸워야 할 의무는 없었음에도) 지방 유력자가 정병들을 모집해 지휘하면 그게 의병이다. 물론 의병 중에는 병역 의무가 없는 천민이나 양반들이 지원한 경우도 많았으나 기본적으로는 군사훈련을 조금이라도 받아본 적 있는 정병 출신 의병들이 당연히 더 많았다. 그나마 1593년 기준으로 의병의 수는 22,600명으로 관군의 4분의 1 정도였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의병의 숫자는 점차 감소 추세에 접어드는데, 임진년 이후에 발생한 계사 - 갑오년 기근으로 군 유지가 어려워진 점, 의병들의 관군 편입, 조정에서 의병들을 물자 운송에 동원했던 일 등이 영향을 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