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청하 (문단 편집) == 상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임청하20대.jpg|width=100%]]}}}|| || 20대 시절 임청하(林靑霞)의 모습 || 1973년에 데뷔했다. 데뷔작은 대만의 인기 작가 [[경요]]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창외(窓外)'[* 여고생과 남교사가 금단의 사랑을 하는 내용인데, 작가인 경요 자신이 고등학교 때 교사와 사랑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이다. 국내에는 "임청하의 여고시절"로 출시되었다. 여기서 그녀는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순수한 여고생으로 출연한다.[* 여담으로 경요가 배출한 여스타들 중에는 [[조미]]와 [[임심여]], [[판빙빙]] 등도 있는데, 이들 역시 중화권에선 스타가 되었지만 임청하만치의 위상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90년대 [[동방불패]]의 중성적인 남성 연기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70년대 대만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새침떼기 신입생이라든가 연인에게 배신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든가 하는 청순가련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주로 [[경요]]의 애정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등에 연이어 히로인으로 출연했다.[* 나중에는 비슷비슷한 캐릭터만 연기하는 것에 질려 경요가 아닌 다른 작가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이 일로 한동안 경요와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동방불패와 같이 [[남장]] 여인이라든가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여인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소위 [[리즈]]시절 임청하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젊은 시절의 임청하는 우리나라의 배우 [[이영애]]와 상당히 닮았다.[* 임청하가 한창 우리나라에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이영애는 슬슬 연예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임청하 전성기 모습과 닮았다는 평이 제법 있었다.] [[성룡]]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成龍: 還沒長大就老了)>(2015)>에서 당시 임청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일화가 기재되어 있다.1978년, 서풍, 진한, 진상림, 임청하, 성룡 등이 함께 태국으로 자선 공연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다 함께 바닷가로 놀러 갔고 일행은 페러세일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페러세일링은 낙하산 같은 커다란 기구를 등에 메고 보트에 줄을 매달아 사람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수상 스포츠다. 이 때 성룡이 나중에 영화 스턴트 장면을 구상할 때 써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가장 먼저 페러세일링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성룡이 낙하산을 메고 하늘로 올라간 후 갑자기 낙하산 줄이 끊겼고 성룡은 그대로 물 속으로 수직 낙하했다. 성룡은 수영을 할 줄 몰랐기에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당황한 일행들이 하나 둘 씩 물에 뛰어들어갔다. 성룡을 구해준 이는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들어간 진상림이었다. 물에서 나온 성룡이 일행 중 임청하만 물에 안 들어간 것을 보고 "남들은 나를 구하기 위해 다 뛰어들었는데 너는 왜 안 뛰어들었어?"라고 하자 임청하는 "나도 뛰어들려고 했어. 그런데 내가 안에 [[비키니]]만 입었지 뭐야. 뛰어 들어가려고 옷을 반쯤 벗었는데 옆에 있던 기자가 내가 옷을 벗으면 사진을 찍겠다는 거야. 그러니 옷을 벗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걸 보니 나 하나쯤 없어도 될 거 같더라고 하하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 성룡은 자서전에서 예전에 이 일화를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 지어낸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화가 나서 묻혀두고 있다가 임청하가 이 일화를 그녀의 책 <운래운거>에 써놓은 것을 보고 자신도 자서전에 써놓는다고 밝혔다.] 80년대 대만에서 [[호혜중]][* 1979년에 대만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했으며 아버지가 대학 교수였고 호혜중 본인도 대만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타이완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 여배우이다. 대만 활동시에는 주로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했지만 1985년 홍콩 영화계로 진출해서 복성고조의 여형사 패왕화 역으로 유명해진 이후에는 무술이나 액션물에 많이 출연했다. 한국에서는 복성고조, 칠복성(원제:하일복성) , 땡큐마담의 여형사 패왕화 역할로 유명. 1989년 <엽마군영> 촬영 중 이새봉과 같이 큰 화상을 입었고 회복은 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1997년 안과의사 출신 정치인(홍콩 내무장관 역임) 하지평과 결혼 후에 연예계를 은퇴했다. 2003년 정계에 입문해서 2023년 현재까지 정치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강소성]]의 정협위원 (한국으로 치면 [[도의원]])아다.]이 청초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로 임청하의 인기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임청하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더 이상 경요의 작품 여주인공을 맡지 않기로 했고 이 때문에 경요는 임청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내 작품으로 떴는데 은혜를 잊었다"는 식으로... 게다가 임청하는 당시 같이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유부남 배우 진한과의 불륜 스캔들을 일으킨 상태였다. 결국 대만에서 불륜녀 및 의리없는 여배우로 낙인 찍히자 임청하는 활동 무대를 완전히 대만에서 홍콩으로 옮겨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2년도에 [[서극]]이 감독한 영화 '촉산'에서 [[정소추]], [[원표]], [[홍금보]], 맹해 등과 함께 출연하여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때의 마녀 분장은 레전설급의 미모를 자랑한다. 이후 <도마단>, [[동방불패]] 등 [[서극]]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또한 1985년에는 긴 머리를 과감히 자르고 짧은 커트 머리로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 출연한다. 대역을 허용하지 않는 성룡 영화인 만큼 유리창에 패대기 쳐지는 경험도 맛본다. (NG장면에서 성룡이 임청하랑 바디슬램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이외에도 영화에서는 임청하가 저택 옥상에서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이 장면은 부상의 위험이 컸기에 임청하 본인이 아니라 성가반 소속의 여자 스턴트맨이 대역을 맡아 찍었다.) 사실 폴리스 스토리 1탄이 지금 시대에서 보면 엄청 잔인한 느낌이 강하다.] 86년도 영화 <도마단>에서는 남장여인으로 출연하여 영화 중간에 여자옷도 입지만 오히려 안 어울린다고 느낄 정도로 중성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주윤발]]과 함께 한 '몽중인'에도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마단에 출연하면서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서인지 비슷한 시기에 촬영한 몽중인에서도 숏컷으로 등장한다. 중간중간에 진나라 시대 여인으로 등장할 때에는 물론 가발이다.] 사실 임청하가 남장연기를 보인 게 도마단이 처음은 아니었고, 70년대 쇼브라더스 영화인 금옥양연[[홍루몽]](金玉良緣紅樓)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보옥]]을 연기한 적이 있다.[* 원래는 여자 주인공 임대옥 역을 맡기로 했다. 그런데 가보옥 역을 맡기로 한 배우 실비아 창('장애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허관걸, 맥가와 함께 최가박당, 주윤발과 함께 우견아랑에 출연했다. 가보옥이 남자지만 어지간한 여자보다 곱상하게 생겼다는 설정 때문에 여배우가 가보옥 역을 맡기로 했음)이 임청하보다 키가 좀 작다는 점 때문에, 두 배우가 서로 역할을 바꾸게 되었다.] 1992년 38살의 나이에 서극 정소동 감독의 [[동방불패]]에 출연하여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로 절정의 인기를 만끽한다. 상대역은 [[이연걸]]이었고, 재개봉관과 비디오 시장에서는 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추석에 개봉한 신용문객잔 도 크게 흥행했고, 연이어 유덕화, 장민과 [[절대쌍교]]도 흥행에 성공했다. 1993년 [[왕조현]]과 함께 출연한 [[동방불패2]]의 성공 후 [[장국영]]과의 [[백발마녀전]], [[주성치]]와의 [[녹정기]]2-신룡교가 연이어 흥행했다.[* 이 영화를 찍었을 때 임청하의 나이는 이미 39살이었다. 물론, 지금이야 활동하기로 치면 한창 활동할 때긴 하다만. (탕웨이나 판빙빙이 지금 2023년 기준으로 40대인데 젊게 느껴진다.) 1993년 당시에는 공리, 왕조현이 20대였고 양자경, 관지림이 30대 초반이었다. 남자배우들도 성룡이나 주윤발이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전성기였던 이연걸이나 주성치는 30대 초반이었다.] 1994년 <화룡풍운>, <육지금마>등 남장여인 역할로 꽤 나왔다.[* <도검소> 등 아얘 남자로 나온 적도 있다] 1인 2역을 맡은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금발의 킬러 역할을 맡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 등도 호평을 받으며, 재개봉관과 2차 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받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만옥임청하.jpg|width=100%]]}}}|| || 임청하(林靑霞)와 [[장만옥]](張曼玉)[* 1990년 대만 금마장 당시. 이 날 영화 <홍진>(滾滾紅塵)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장만옥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둘이 처음으로 만났던 영화가 [[폴리스 스토리]](1985)였다.] || [[중경삼림]]을 마지막으로 40세였던 1994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미소년지련, 유원경몽이 필모그래피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냥 나레이션만 맡았을 뿐이다.[* 은퇴 후 나레이션을 맡았던 미소년지련과 유원격몽 모두 공교롭게도 친한 동료배우인 [[왕조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중경삼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 동안 자신의 중성적인 이미지를 너무 울궈먹는 영화계와 대중들에게 환멸을 느껴서였다고. 한국에서는 임청하의 인기에 전작들이 최신작인것처럼 늦깍이 개봉하거나, 비디오로 출시되는일이 허다했다. 동방불패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서 한국에서는 <청우회>라는 팬클럽이 결성되었고, 내한했을 당시 임청하를 위해서 한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동방불패2> 홍보차 임청하가 내한한 적이 있는데, 당시, 피카디리 극장이 아수라장이 될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서, 10대 극성팬들이 몰려들어 유리창과 의자가 부서졌다고. 임청하는 신인이었던 74년에도 내한한 적이 있었다. 한중합작 영화를 위해 내한했다는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