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희 (문단 편집) == 생애 == 후삼국시대 꽤 세력을 떨친 인물로 보인다. [[궁예]]의 [[태봉]] 시기에 [[파진찬]](波珍餐) 관등을 지냈고 고려가 건국되고 [[태조(고려)|태조]] 신성대왕이 [[철원성]]에서 즉위 한 후, 대대적으로 관료를 임명할 때 제1대 [[병부령]](兵部令), 즉 고려의 초대 [[국방장관|국방부장관]]에 봉해지는 등 요직을 지냈다. 태조 본인이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다는 걸 고려해 볼 때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최측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태조는 세력이 미약한 [[정윤#s-4]] [[혜종(고려)|혜종]]을 위해 군부의 수장인 임희의 딸과 혼인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그렇게 임희의 딸은 [[의화왕후]]가 되었다. 허나 임희의 세력은 [[정종(고려)|정종]], [[광종(고려)|광종]]의 황보 가문의 세력을 이기지 못해 혜종과 의화왕후의 결말이 영 좋지 못했다. 외손주로 흥화궁군(興化宮君), [[경화궁부인]], 정헌공주(貞憲公主)가 있다. 족보에는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고려 태조로부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고, 충청도 일대를 통치하던 성주(城主) 출신으로 대모산성(大母山城)을 지었다고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엔 관련 기록이 일절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