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무카 (문단 편집) === 테무진과 나눈 친분과 갈등 === 본래는 칭기즈 칸의 자리의 오르기 전의 [[테무진]]과 '''안다의 맹세'''[* '안다의 맹세'는 [[의형제]]를 맺는 의식인데, 그것도 세 번에 걸쳐서 맺었다.]를 나눌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실제《[[원조비사]]》의 기록에서 테무진과 자무카는 적으로 만나는 상황에서조차 서로를 형제라고 불렀다. 정치적으로는 적대적인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그들은 인간적으로 서로를 끝까지 형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테무진이 메르키트족에게 아내 [[보르테]]를 납치당했을 때 함께 메르키트족을 쳐서 되찾아온 일도 있었다. 그러나 테무진의 세력이 급속하게 성장하자, 자무카는 그에게 위협을 느끼고 결별하게 된다. [[몽골비사]]에서는 자무카의 동생인 타이차르가 말을 훔치다 테무진의 부하인 조치 다르말라에게 사상되자[* [[몽골인]]에게 말은 가족 그 자체다.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말과 함께 자라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가족인 것. 따라서 말 도둑질은 중죄 중의 중죄이며, 말 도둑을 발견한 경우 그 자리에서 죽여도 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 야사에서는 쏘기 전에 타이차르란 걸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형했다가는 자무카와 척을 지게 될 것을 알았으나, 말 도둑질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처형했다고 한다.] 공격해왔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테무진과 자무카의 관계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었으며 [[몽골]] 고원의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자무카와 테무진이 각자의 연합세력을 이끌고 충돌하게 되는 '''13익 전투'''가 벌어지게 된 것도 이 시기다.(1190년) 당시에는 자무카도 구르 칸이 아니었고, 테무진의 세력도 막 자무카에게서 독립한 수준이었다. 덕분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13익 전투에서 자무카는 보기 좋게 테무진을 압살해버렸는데, 어지간히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는지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테무진은 4년간의 공백기를 보낸다.[* 테무진은 이 전투에서 패하고 나서 어떤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다가, 4년이 지나서야 다시 사서에 이름을 드러낸다. 영화 등 현대 작품에선 이때 노예로 팔려가 고초를 겪었다는 식의 각색도 하는 모양. 사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상상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아마 13익 전투의 패배 이후 테무진은 4년간 금나라로 피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무카는 13익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면서 테무진 편을 들었던 치노스족의 모든 남자들을 죄다 [[팽형|삶아죽이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전사들의 시신을 말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치노스족은 몽골 선조들의 직계 혈족에 해당하는 명예롭고 권위있는 씨족이었고,[* '치노'가 [[늑대]]라는 뜻이니 치노스족은 우리말로 하면 늑대 씨족이 된다. 말하자면 몽골의 상징 그 자체인 것이다.] 이들을 욕보인다는 것은 그들과 관련이 있는 다른 몽골 부족들과의 관계도 악화시킬 수 있는 매우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결과적으로 자무카는 민심을 크게 잃는다. 라이벌을 제거하고 초원의 새로운 패자로 떠오른 자무카 입장에서는 옛날의 고루한 권위를 제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적의 편을 들기까지 했으니 그들의 세력을 축소시키는 것 자체는 자무카 입장에서 충분히 시도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몽골인들에게 상징으로 인식되는 씨족을 영혼까지 욕보이는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했으니,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전근대시대에는 신앙이나 상징물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예를 보면 제아무리 강대한 세력을 손에 넣은 실력자들조차 [[천황|덴노]]는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또한 [[유럽]]에서도 [[교황]]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가 간 분쟁에서 중재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근현대에서도 정도만 약해졌지 신성모독을 하거나 국민적 정서를 건드리는 일 혹은 상징적인 인물을 건드릴 경우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는 볼 수 있다.] 몽골에서도 선조들의 직계 혈통과 그 상징성에 대해 사람들의 믿음이 대단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아무리 실력자여도 칸이 되기 힘들었다. [[북원]] 시대를 비롯한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오이라트]]의 [[에센 타이시|에센]]처럼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칸]]을 노렸다가 몰락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결국 이방인들은 권력을 차지하더라도 대부분 실권만 차지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 결론적으로 이 사건 때문에 오로오드족, 망구드족 등의 유능한 세력들이 자무카의 세력에서 탈퇴하고 테무진 쪽으로 돌아섰다.[* 능지형으로 처형된 전승에선 이때의 잔혹한 행동으로 인해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걸 각오했다고 말하며 당당히 능지형을 받았다.] 이때부터 자무카와 테무진의 세력은 서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게 된다. [[야사]] 중에서는 자무카가 서쪽의 나이만족과 손잡았을 때, 이미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초원의 통일은 자신이나 테무진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테무진의 가능성이 훨씬 커졌기 때문에 일부러 테무진의 통일을 도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테무진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결집시켜 한꺼번에 소모시키면 칭기즈칸이 초원을 완전하게 통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