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비드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예멘 자비드 1.jpg|width=700]] 이슬람 성지인 알 야샤이르 모스크 9-11세기 지야드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던 자비드는 11세기 후반나자흐 조와 내륙의 술라이히 왕조 간의 전쟁에서 후자에게 자주 공격을 받았다. 1157년에 나자흐 조와 마흐디 조의 전쟁을 틈타 내륙의 자이디 이맘국이 자비드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마흐디 조에게 축출되었다. 한편 그후 마흐디 조가 내륙의 함단 왕조 및 [[아덴]]의 주라이 왕조와 싸우던 1174년, 이집트에서 당도한 [[아이유브 왕조]]의 왕공 투란 샤 ([[살라흐 앗 딘]]의 동생)이 도시를 정복하였다. 아이유브 조는 고지대의 사나 대신 이집트와 항상 연락할 수 있는 저지대의 자비드에 총독부를 두었다. 그 후신으로 1235년 세워진 [[라술 왕조]] 역시 자비드를 수도로 두었고, 1454년 그를 대체한 현지 국가인 [[타히르 왕조]] 역시 전통을 이었다. 1517년 타히르 조를 전복시킨 맘루크 군대 역시 우선 자비드에서 통치하였는데, 이들은 본국 ([[맘루크 왕조]])가 멸망하자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다. 이에 1539년 하딤 술레이만 파샤의 오스만 군이 자비드에 진주하였고, 도시는 에멘 에얄레의 주도가 되었다. 1568년 자이디 반란으로 오스만 조의 지배력은 자비드 일대에 국한되기도 했으나 대대적인 반격으로 15년 후에는 역으로 자이디 이맘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게 된다. 그러나 17세기 초엽 카심 왕조를 중심으로 뭉친 자이디 세력의 반격에 오스만 군은 고전하였다. 1629년 사나와 타이즈가 함락되었고, 모카와 자비드에 국한된 오스만 군은 1635년 최후의 반격 시도마저 실패하자 북예멘에서 철수하였다. 이로써 자비드는 자이디 이맘국 (카심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넘게 이맘국에 반대하는 세력의 거점이던 도시는 의도적으로 소외되었다. 인도의 이스마일파 공동체인 다우디 보흐라의 다이 세이드나 모함메드 에즈웃딘이 핫즈 여정 도중 자이디 세력에 의해 독살당하여 자비드에 묻힌 바 있다. 그의 영묘는 성지 중 하나이다. 그외에 1840년대 이맘국과 티하마 (아시르)의 샤리프 후세인이 싸울 때를 제외하곤 역사의 장이 되지 못한 채 과거의 모습 그대로 현재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