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오티 (문단 편집) === 부원지쟁과 장훈복벽 === 1916년 부총통 [[리위안훙]]이 대총통에 계임하고 [[돤치루이]]가 국무총리 겸 육군총장에 된 이후 두 사람 간의 정쟁인 [[부원지쟁]]이 벌어졌는데 자오티는 돤치루이와 당시 협력관계에 있던 장강순열사 장쉰의 쉬저우 회의에 참여, 돤치루이 지지를 천명하였고 이 때문에 후일에 복벽 지지자로 분류되기도 했고 1917년 5월 돤치루이가 면직되자 극렬히 반발, 중앙과의 관계단절을 선포하고 리위안훙의 하야를 촉구했다. 그런데 1917년 7월 1일 [[장쉰]]이 [[장훈복벽]]을 단행하자 하남성장 전문열과 함께 진수사, 도윤들에게 복벽 반대의 뜻을 밝히고 군민에게 공화를 유지할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장쉰 토벌을 통전, 상동진수사 보덕전(寶德全)을 상동총사령에 임명하여 관할 지역의 철로를 경계하게 하는 한편 쉬저우에 주둔한 장쉰의 정무군의 북상에 대비했다. 또한 7월 10일 카이펑 등 주요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장쉰 토벌에 나섰다. 7월 12일 장쉰은 토벌되었고 7월 14일 돤치루이가 베이징에 임성, 7월 17일에 다시 내각을 조각함으로 돤치루이 내각이 재출범하였다. 이후 자오티는 하남성장을 겸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