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공원 (문단 편집) == 자유공원 시대(1957년~현재) == [[파일:external/senka36.iptime.org/m63.jpg]] 자유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동상. 오늘날의 명칭인 '자유공원'으로 바뀐 것은 1957년부터다. 1950년 9월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만들었고 공원 남동쪽 부지에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당시 [[김정렬(1907)|김정렬]] 인천시장에 의해 공원 명칭이 '자유공원'으로 명명됐다. 공원 내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비롯해 19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석정루나 연오정 등 팔각지붕의 전통 형식의 건물도 있다. 특히 석정루나 자유공원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인천항 전경이 꽤 멋있는데 석양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매년 [[12월 31일]]에 서구 정서진과 월미도 등과 함께 해넘이 행사가 자유공원 광장에서 진행되곤 한다. 과거에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조품 버전이 자유공원 산기슭에 세워지기도 했으나 인천과 자유의 여신상의 관련성이 전혀 없는데다 지나친 친미 사대주의의 온상으로 비춰진다는 이유로 1990년대 중반 철거됐다. 자유공원 광장에는 대형 비둘기집도 있었는데 비둘기 [[똥|배설물]] 등의 문제로 인해 비슷한 시기에 없어졌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축이자 한반도 유일의 임시정부였던 [[한성 정부|한성 임시정부]]의 수립을 의결한 곳이 바로 이 공원이기 때문이다. [[한성 정부|한성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23일]] 24인의 국민대회 13도 대표자들이 이 공원에서 모여 <국민대회 취지서>를 발표하고 <임시정부 선포문>을 선언함으로써 수립되었다. 자유공원 광장에 임시정부 수립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