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민주당(일본) (문단 편집) === 지방 === [[파일:일본 자민당 지지율.png]] 자민당은 일본 대부분 지역에서 30% 내외의 고정 지지층을 얻고 있으며,[* 그나마 자민당이 확실히 힘을 못 쓴다고 평가받는 지역은 '''[[오키나와현]]''', [[이와테현]] 정도뿐이다. 나고야 등이 위치한 [[주부(일본)|주부권]](특히 도카이)[* 단, [[호쿠리쿠]] 지방 제외]이나 개척지란 느낌이 강한 [[홋카이도]] 지역도 원랜 상대적 자민당 약세 지역으로 평가받았으나, 2010년대 들어선 원체 야권 자체가 지리멸렬한 상황이라 엇비슷한 형국. 그 외 긴키(관서) 지방은 오사카 지역정당인 유신계 정당과 공명당, 공산당 등의 지지세가 뒤섞여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오키나와에서도 [[오키나와현 제4구]] 쪽은 자민당 세가 제법 있다는 게 함정. 완전 열세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이와테에서 자민당 세가 약한 것은 지역이 딱히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오자와 이치로]]라는 거물 정치인의 순전한 개인기 덕이다. 원래 이 정치인도 자민당 출신이었다.] 특히 2010년대 아베 내각 들어 야권의 경쟁력 저하, 젊은 층의 우경화 등으로 인해 자민당의 지지세가 더 탄탄해지고 있다. 주로 [[규슈]][* 예외적으로 [[오이타현]]은 [[사회민주당(일본)|사회민주당]]이 우세한데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지역구였던 영향이 크다.], [[주고쿠]][* [[아베 신조]]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이 있다.], [[시고쿠]][* 단, [[고치현]]은 특이하게도 [[일본공산당]]이 선전하는 곳이다. 이는 막말 메이지 유신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치현의 전신 도사번이 삿쵸도비라고 하여 토막파에 가담했음에도 사쓰마 조슈 양대 파벌에 밀려나 푸대접을 받았고 이후 나카에 조민, [[고토쿠 슈스이]] 등 자유주의 찍고 아예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기원에서 유래한다. 일본 공산주의의 시조 고토쿠 슈스이가 바로 고치현 출신이다.] 등 대부분의 서일본 지역과 동일본 지역에서도 [[동해]]를 마주보는 쪽인 [[호쿠리쿠]] 지역[* [[니가타현]],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과 [[도호쿠]] 지방의 [[아오모리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은 자민당 지지세가 높은 곳이다. [[55년 체제]] 당시에는 [[여촌야도|보촌혁도]] 현상이 강하게 반영되어서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주요 대도시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였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대도시에서도 자민당 지지세가 나타나고 있다. 지도에서 드러나듯이 상대적으로 서일본이 동일본에 비해 지지세가 더 높고 특히 '''메이지 유신과 군국주의화를 주도한''' 야마구치현(조슈번)과 가고시마현(사쓰마번)에서의 지지세가 높은데 이는 자민당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삿초 동맹이 나온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보신 전쟁]]에서 메이지 정부에 반기를 들다 진압당한 [[도호쿠]] 중 남부 지방의[* 특히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아이즈 번]](現 후쿠시마현 서부)] 경우 자민당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에서도 증명된다.[* [[이와테현]]과 더불어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미야기현]]에는 이곳 출신 [[지바 도시치]]가 세운 [[안중근]] 신사가 있다.][* 다만 이곳 출신이라고 [[일본제국|일제]]의 침략행위에 무관하다 볼 수 없는게 [[을사조약]] 채결을 주도한 일본의 외교관 [[하야시 곤스케]]가 [[아이즈 번]] 출신이었다.] 오사카의 경우 타 대도시에도 없는 파란색이 있을 정도로 자민당의 지지율이 전국 최하인데 이는 과거 오사카가 메이지 정부의 수도로 지정될 것을 기대하며 엄청나게 지원을 퍼부었지만 뒤통수 맞고 여전히 에도(도쿄)가 수도로 유지된되다 오히려 도쿄 일극 체제로 가게 되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 물론 이것도 딱히 오사카가 진보적인 건 아니고 그냥 지역 정당+똑같은 보수 정당인 [[오사카 유신회]]가 존재하니까 그런 거다. 이 정당이 등장하기 전까진 공명당의 지지율이 높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